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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un 05. 2023

시민기자, 그 이름의 무게

견디거나 포기하거나

시민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건 2022년 3월 27일 일요일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기사를 송고한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내가 쓴 글이 기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글쓰기에 막 재미를 붙이고 있던 때 ‘오마이뉴스’라는 언론매체는  전문기자가 아니어도 시민기자로서 기사를 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포털사이트 다음(daum) <홈&쿠킹>이나 <직장IN> 섹션에 내 글들이 자주 노출되면서 ‘나 글 좀 쓰나?’ 하고 자신감이 상승할 때이기도 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고 처음 송고한 글이 기사로 채택되었다. ​어안이 벙벙하고 신기했다. 우연이었겠지. 열흘정도 후에 다시 글을 송고했는데 맙소사, 또 기사로 채택이 되었다. 제보한 두 편의 글은 직장인으로서의 소회를 담은 글이었다. 시민기자로서의 사명감보다 내 이야기를 함으로써 얻게 될 공감에 초점을 두었다. <사는 이야기>는 정치나 사회면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합리화 했다.


세 번, 네 번째 글도 연이어 채택이 되었다. 눈에 띄지도, 높은 등급의 기사도 아니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기사로 채택이 되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그러다 남편이 당근마켓에서 웃돈을 주고 포켓몬 빵을 사 온 얘기를 글로 써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뒤 이어 제주에서만 선물 쿠폰 사용 시 추가 비용을 받는 이상한 치킨값에 대한 기사까지 오마이뉴스 주요 뉴스로 선정되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댓글과 좋아요 수로 알 수 있다. 기사가 탑배치되고 주목을 받으면 댓글이 많이 달린다.  첫 번째 기사에 ‘극혐’이라는 댓글이 달렸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극도로 혐오할 이유가 무엇일까? 내 글이 그렇게 형편이 없나? 주눅이 들었다. 공감 가는 글이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의 댓글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난이었다.


일기를 왜 기사라고 실었느냐부터 이러니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다 하는 댓글이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기사를 아예 읽지도 않고 제목이나 내용의 일부만 가지고 트집을 잡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용히 묻히는 기사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이슈가 되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한두 번 이목을 끄는 기사를 쓰니 진짜 기자가 된 것 같았다. 온 신경이 기삿거리를 찾는데 쏠렸다. 퇴직, 쓰레기 방치, 노키즈존처럼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소재에 나의 시선을 담아 글을 썼다. 한 번이 어렵지 기사 쓰기에 탄력이 붙자 글력도 붙었다. 쓰는 기사마다 반응이 뜨거웠다.


4개월 동안 14편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1년 가까이 기사를 쓰지 못했다. 뮤지션 이상순 님이 제주 동복 작은 마을에 카페를 열었다는 소식 관련 기사가 마지막이었다. 사실 이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오래도록 다음 기사를 쓰지 못할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사 내용은 카페로 인해 인파가 몰려들어 조용했던 마을이 혼잡해졌으며 집과 맞닿은 인도에 긴 줄이 이어져 주민 불편 및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예약제로 시스템으로 변경한 건 훌륭한 대처였다고도 덧붙였다. 이외에 한라산 쓰레기 문제와 관광객들로 인한 관광지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 등을 다양한 사례를 엮어 자연,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게 중요하다고 끝맺었다.(https://omn.kr/1zohq)​


기사는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면에 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마이뉴스 많이 읽은 기사, 댓글 많은 기사 1위에 랭크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쓰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으니, 이상순, 이효리 님의 영향력이었다. 조회수 올리려고 제목에 이상순 카페라고 썼냐, 네가 뭔데 남이 카페를 하든 말든 상관이냐, 관광지에 사람 많이 오면 좋은 거지 배부른 소리 한다... 댓글들이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오마이뉴스에 제보한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싣고 중복게재임을 밝혀왔는데 몇 분이 브런치까지 찾아와 댓글을 달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칭찬일리 없는 댓글들을 마주하자 이번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신상이 다 털릴 것 같았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마이뉴스 측에 중복게재 알림을 삭제 요청함과 동시에 브런치에서도 해당 글을 삭제했다(하루에도 수십 편의 기사가 쏟아지고 내가 쓴 기사 또한 금방 잊혔지만 당시에는 두려움이 컸다).


최근 다시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했다. 그간 글쓰기는 계속해 왔다, 기사로 전송하지 않았을 뿐. 시민기자로서 다시 활동하고 싶었다. 10개월 만에 기사를 송고했는데 생나무(기사가 되지 못한 글) 판정을 받아 기사로 실리지 못했다. 다음 기사를 보냈다. 배치대기로 하루 이상 풀리지 않고 있었다. 또 그다음 기사를 보냈다. 이번에도 생나무 판정을 받았다.


작년에는 기사로 썼던 13편의 글이 모두 기사화되었다. 생나무는 처음이라 당황했는데 두 번 생나무 판정을 받으니 기세가 팍 꺾였다. 무엇이 문제일지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지만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시민기자를 다시 시작한 김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시민기자 1:1 게시판에 문의를 남겼다. 혹시 이런 이유가 맞을까요?


예상은 적중했다. 생나무 중 첫 번째 기사는 내용 중에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포함되어 있고, 기사 전반적으로 화가 난 감정이 드러나있었다. 두 번째는 아예 대놓고 분노의 감정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기사는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내가 쓴 글은 감정이 팩트를 밀쳐내고 전면에 등장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5편의 기사가 생활면에 실렸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간신히 기사로 살아남은 수준이다. 등급이 높지 않다는 얘기다. 예전처럼 기사로 실리는 데 만족하고 싶지 않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기사를 쓸 때는 언제나 ‘오름’(최고 등급의 기사)을 생각하고 쓴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판단하는 등급은 그렇지가 않다. 이유가 뭘까?


시민기자의 글은 대부분 <사는 이야기>에 치중한다. 이 때문에 ’생활면인데 어때?‘ ’좀 가벼운 내용이어도 상관없겠지.‘ 그간 기사를 가볍게 여겨 왔음을 고백해야 겠다. 굵직한 사건, 사고보다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하는 탓에 기사의 소재나 자료 수집이 미비했다. 객관적 데이터 없이 나 자신의 경험치만으로 글을 쓰다 보니 글이 빈약하고 전체적인 연결이 느슨해졌다.


최근 알게된 시민기자 한 분은 취재를 위해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고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글은 풍성해지고 객관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사 또한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힐 기회를 얻었다. 정치, 사회면이 아니라 생활면이라도 기사는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악플이 달리지 않을 안전한 소재, 주장하는 바를 뚜렷이 밝히지 않은 두루뭉술한 전개 또한 글의 매력을 잃게 했다. 어중간한 주인공보다 캐릭터가 확실한 악역이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주장을 담은 글은 통통 튀는 글 앞에서 맥을 못 춘다. 날카로운 시선을 갖추고 생각을 벼리는 글쓰기를 해야 할 때이다.


시민기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반문했더니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시민기자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그 이름에 걸맞은 글이 나온다.


야신(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전 프로야구 감독이 ’돈 받으면 프로‘라는 말을 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발행하고 단돈 천 원이라도 받는다면 더 이상 아마추어 기자가 아니란 뜻이 된다. 기자라는 명목 하에 글을 쓴다면 정보를 제공하든, 사유할 거리를 던져주든, 공감을 넘어 울림을 주든 독자에게 유익한 글을 써야 한다. 전문 기자가 아닌 시민 기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닐 터, 시민기지로서 글을 쓰려거든 그 무게를 견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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