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방법
“누구야? 좀 전에 오줌 싼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남편과 아이를 호출한다. 들려진 변기커버와 변기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는 노란 오줌 자국. 볼일을 본 뒤 마무리를 깨끗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제발 앉아서 소변을 누라고 누누이 이야기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모양이다. 대변을 볼 때에는 앉아서 한 번에 대변과 소변을 해결하지 않나? 남자와 여자, 신체구조가 다르니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주변에 묻지 않게 볼일을 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 때 다음 사람을 위해서 휴지로 한번 쓱 닦아내면 좋으련만 아쉽다. 지금은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둘째가 머지않아 아빠! 오빠! 하며 두 남자에게 잔소리 폭탄을 날리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때가 되면 집에서도 화장실을 남자/여자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장실 사용으로 곤혹스러운 건 집에서보다는 외출해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때 더욱 그렇다. 노크를 하고 화장실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후 대차게 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 남겨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건 그리 달가운 경험이 아니다. 그 흔적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형태와 냄새를 지니고 있다면 더더욱. 낯선 것과의 조우로 인한 당혹스러움이 조금 가라앉을 때쯤 다시금 떠오르는 건 의문이다. 물과 함께 떠내려갔어야 할 이 물체가 어째서 여기 이렇게 덩그러니 남아있느냐 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앉았던 자리를 한 번이라도 되돌아봤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공중화장실에 경험한 것과 비슷하게 불쾌한 감정을 최근 헬스장에서 경험했다.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서는데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가진, 앳되보이는 학생 넷이 거울 앞에 서서 치장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수건을 발로 끌어와 물기를 닦으며 물었다.
"이거 학생들이 이렇게 한 거예요?"
"네. 수건이 락커에 있어서요."
당연하게도 자기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내가 그들 주변에 떨어진 바닥의 물기를 대충이나마 닦아내는 동안 누구도 거들지 않았다. 그저 옆으로 슬쩍 비켜설 뿐이었다.
샤워장 안의 광경은 더욱 황당했는데 한쪽 벽에 수건이나 타월을 임시로 걸어둘 수 있게 설치된 봉에 팬티와 브라들이 널려있던 것이다.(더 정확하게는 적나라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출입구 쪽이라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는 위치였건만 샤워장을 빠져나가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속옷을 챙기지 않았다. 내 두 눈은 졸지에 봉변을 당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논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공공장소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구분은 상식일 것인데 그들의 무지함과 부도덕함에 할 말을 잃었다. 먹던 생수병이나 커피를 그냥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사용한 수건을 회수함에 넣지 않는 사람들, 선풍기를 죄다 틀어 사용한 후 끄지 않는 사람들... 사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으니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평소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서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비치되어 있는 무선청소기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이는 일이다. ‘청소병’이 있는 건 아니고 샤워하고 나온 맨 발바닥에 이물질(특히 머리카락)이 묻는 게 싫어서이다. 옷을 입고 소지품을 다 챙긴 뒤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 역시 처음과 같다. 다음 사람이 쌓여있는 내 머리카락을 피하려 까치발로 다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건 헬스장에서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맞다, 헬스장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탈의실을 정돈하고 샤워실 청소를 하는 등 자기들이 맡은 업무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오늘 오전에 회사 화장실에 파우치를 두고 왔었다. 사실 그걸 인지한 건 다음 화장실을 이용하던 오후였다. 파우치는 화장지 걸이대 위에 두었던 그대로 놓여있었다. 미처 뒤돌아보지 않은 탓이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한번 둘러보는 건 1초면 충분하다. 내가 흘려둔 걸 치우는 건 1분이면 된다.(흘려둔 게 휴대폰이나 지갑일 수도 있다, 혹은 파우치이거나.) 남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은 필요 없다. 나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자고로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이니까. 이 간단하고 명료한 진리는 모든 장소, 모든 순간에 필요하다, 공중화장실 문에서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