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4탄
돈걱정 없이 살고 싶다. 무조건 아껴 쓰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어린 시절 부잣집 친구가 부러웠다. 색색별 예쁜 원피스에 자가용을 타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이 보일만큼 가까운 곳에서 친구가 내렸다.
살랑거리는 원피스와 예쁜 구두가 너무나 탐나던 때가 기억의 저편에서 나를 깨운다.
비가 오는 날엔 커다란 우산을 든 낯선 남자가 교실 앞 복도에 서 있다가 친구를 차에 태우고 부르릉 엔진 소리와 함께 희한한 석유냄새를 품어내고 가버렸다.
머리가 유난히 곱슬거렸고 눈동자가 또렷또렷하고 맑았다. 피부도 뽀얗고 세상 것을 다 가진 듯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와 내 모습을 비교하느라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 친구도 나에게 선뜻 손 내밀지 못한 채 그저 우린 어느 만큼 서로 다른 거리를 두며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고 나의 시야에서 진짜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손재주가 많았던 나의 엄마는 옷을 떠주었다. 청바지에 펑크가 나면 동물 모양으로 아플리케를 하여 가려주었다. 뜨개실로 짠 내조끼와 털 스웨터와 털모자 , 털 목도리는 나름 솜씨 좋은 울엄마의 작품 이었다.
늘" 이것은 세상에 하나뿐이여! 너도 이 세상에 하나뿐이니 소중한 것이여!"
지금 생각해보니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사랑이었지만 난 예쁜 원피스가 입고 싶다며 며칠을 밥을 굶고 울며 불며 징징대었다. 그 후, 샤랄라 원피스를 언니와 나란히 선물 받았다. 그날 밤 난 공주가 되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 가던 날, 구름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었을거다. 내 기억 속에 숨어있다가 가끔씩 미소를 짓게 하는 원피스 인증숏을 보니 그리 이쁘지 않지만 기억 속엔 분명 '렛 잇 고'를 외치는 엘사 공주였다.
돈이 없어서...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하시고, 바늘로 꿰매 주고, 바지 밑단을 접어 올렸다 폈다를 해주셨던 어머니... 과자며 빵 대신 간식으로 보름달만 한 술빵에 콩 몇 개 넣어 쪄놓고 외출하셨다.
4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치시느라 빠듯한 삶 속에서도 늘 긍정적이며 좋은 날이 올꺼라며 괜찮다 괜찮아~내가 엄마 되어보니 엄마의 고단했던 삶을 조금은 알듯하다.
알뜰하시고 야무진 엄마에 비해 난 용돈관리도 못하고 돈 있으면 쓰기에 바쁜 헐렁한 딸이었다. 그래서 혼나기도 했고 언니에게 돈을 꿔서라도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야 하는 성격이었다.
"잘 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돈이 많아야 잘 사는 거지 왜? 공부를... 그러나 나는 뒤늦게야 돈과 공부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세상이며 목표 없이 사는 삶 보다 목적을 향해 가는 삶을 추구하자는 말이다.
살면서 돈 때문에 웃고 울었던 일들이 스치며 올해도 새해 설날이 다가오니 갑자기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나 옮겨본다."애들이 밥상에 둘러앉기 전에 돈을 모아야 한다"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여!"
"돈은 있을 때 아껴야 하는거다 없으면 아낄 돈도 없단다" 한 푼 두 푼 아낀 돈으로 피아노를 사주신 엄마
전공자도 아닌 딸에게 그저 갖고 싶어 하는 내 맘을 아시고 시집가기 전 내 방에 피아노를 들여 주셨다.
그날 아버지에게 엄마는 돈이 없다고 해놓고 뭐라 변명을 하셨을까?? 그저 고맙고 사랑하는 내 엄마다.
"살다 보면 힘든 날이 있을 거다"하시며 결혼자금으로 내 통장에 돈을 넣어 주셨다. 난 철없는 딸이라서 그 돈으로 자동차를 바꿨다. 얼마나 좋던지? 새 차 시승식을 했다. '힘든 날이 나에겐 오지 않을 거야' 믿으며...
집도 없는데 차를 사고 맞벌이를 하여 모으지 않고 그냥 그냥 잘 살아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하나둘 집 장만을 하고 집들이를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들이를 다녀오던 차 안에서 우리는 그제야 후회했다.
차보다 집이 먼저였구나! 그제야 외식이며 여행이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결혼 10년 차 되던 해 경기도 고양시에 25평 우리 집을 처음 장만했다. 13층 남향이었고 햇살도 잘 들고 좋았다. 학교 다니기도 편했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그래도 서울로 가야겠다 싶어 서울로 갈 준비를 했다. 운이 좋았다 .두배의 가격을 받고 집을 팔고 5년 만에 서울로 입성했다.
억억억 하는 시세에도 빚을 갚아가며 힘겹게 버티며 살았다. 돈이 정말 최고의 행복을 주는 게 맞나?싶을 정도로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정신없이 소중한 시간들을 돈에 집착하며 살았다. 덕분에 33평 아파트를 지니고 살았으며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
친구 찾기를 했다. 밴드로 연결된 초등학교 멤버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가장 궁금했던 부잣집 친구를 찾았다.
한껏 예쁜 옷을 차려입고 비싼 향수를 뿌리고 뾰족구두를 신고 나름 값나가는 가방을 메고 강남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얼마만의 해후던가?? 초라함을 가린 당당함으로 나섰다.
풋풋함은 사라지고 완전 아줌마 아저씨가... 세월의 흔적을 훈장처럼 달고 나타나 과거로 과거로 한참을 갔다. 그그그 친구의 곱슬머리는 뽀글이 아줌마가 된듯했고 주름진 모습은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 어찌 된 걸까? 기억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친구는 어린 시절 공주놀이가 힘들었다고 푸념했다.
그리고 어느 날 궁궐 같은 부잣집이 불에 다 타서 하루아침에 길가에 나앉게 되었고 급기야 친척집을 전전긍긍하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 고생의 흔적이 얼굴과 표정 속에 있었지만 애써 웃음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친구의 불행이 슬프고 애잔했지만 어린 시절 그 부러움이 없었다면 난 지금 여기에 없을 것 같다.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살아남기엔 1순위 아니겠는가? 설날 세뱃돈을 얼마 받았는지? 물어 보던 옛날이 그립다.하지만
돈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오늘도 부여잡고 팽팽하게 줄다리기 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돈 보내는 딸이 최고지? 엄마, 맛난 거 드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기요~~ 머니머니 해도 어머니 ㅎㅎㅎ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건 Money 가 아니라 Mother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