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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아들은
사장님이 되었다!

부릉부릉~~ 살아남기 3탄

by 아이리스 H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흔들고 덮치면서 삶의 기준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현명한 건지? 그 누구도 딱히 답을 찾지 못하는 악재의 상황에서 너도 나도 살아남기를 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좋은 날이 오기만을 바라며 장밋빛 인생만을 꿈꿀 수는 없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보다는 잠자코 상황 파악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겁 없는 20대 아들과 50대 아버지는 일을 저질렀다.


둘째 아들의 예명은 희망이다. 희망이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 지원을 하였고 전역한 후 무작정 하노이로 날아왔다. 공부를 계속하느냐? 마느냐? 의 선택길에서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의류무역사업을 배우러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희망이는 뭔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6개월 후 , 희망이는 인생 공부를 사회 속에서 배우겠다며 또다시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살포시 날개를 접고 어학공부를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회화와 베트남 기초부터 차근차근 도전하며 나름 빠르게 어학실력을 쌓아갔다.


그렇게 1년 후, 아들은 아버지의 평생 쌓아온 사업장 위에 숟가락을 올렸다. 남들 눈에는 쉬워 보였을지 모르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5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의 불꽃 튀는 전쟁은 시작되었다.


집안에서는 늘 다정하고 부드러웠던 아버지가 회사에서는 카리스마 작렬하는 사장님이란 사실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베트남에서 왕초보로 일하며 직원들 간의 모든 소통도 영어나 베트남어로 해야 했고 생소한 무역용어와 의류업체의 까다로운 일들을 해내기엔 부족함을 많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여러 번의 몸살과 마음의 상처가 깊어가고 있었다. 화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고 당황했던 것 같다. 성실파 아버지의 칼 같은 출근시간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침잠이 많아서... 일처리 능력이 다소 부족하니 당연 실수가 많았을 터 혼나고 깨어지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상태는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하지만 30년 아버지의 노하우를 어찌 짧은 시간에 이해하며 따라잡을 수 있을까? 20대 아들은 쾌속 질주를 하였고 50대 아버지는 더 빨리를... 외쳤다. 급기야 아들은 앓아누웠다. 2주를 아니 3주를 쉬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서 아들은 급기야 백기를 들었다.


그쯤 한국에서 친형이 방학중이라 이곳으로 놀러 왔고 형제 우애가 남달리 좋았던 터라 형제는 여행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토닥토닥 서로에게 에너지를 충전해 준 듯했다. 각자의 삶에 기름칠을 한 듯 삐걱거림

없이 다시 힘차게 일상 복귀를 했고 가족은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급기야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던 중고 오토바이를 몰래 사서 출근시간을 지켰다. 평일은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하노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먹으며 나름 20대 청춘을 즐겼다. 아버지는 연신 아들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내려놓기를 하는 듯 보였다.


아들의 두 번째 엉뚱한 일!! 어학공부를 함께 하던 여자 친구와 유튜브를 몰래 시작했고 베트남 소식과 먹거리를 소개하며 재미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MBC 아침방송까지 출연하여 베트남 음식을 소개했다. 유튜브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회사일은 뒷전이 되어갔다. 그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거슬렸다.


7시간~ 8시간 공들여 찍은 영상을 편집하느라 밤을 새우고 회사에 출근하여 졸면서도 20대 빛나는 청춘만이 가능한 투잡으로 바쁘게 살았다. 회사일을 배워가길 바라는 부모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20대의 기세에 50대 아버지도 백기를 들었다.


1년 전, 잠시 쉬어 가라는 신호처럼 코로나 19가 터졌고 베트남 여행객뿐 아니라 가족들도 발이 묵였다. 한국 갔던 여자 친구도 돌아오지 못하고 희망이는 일도 유튜브도 못하고 답답하고 긴 시간들을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실컷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 라면 하나 끓여먹고 또 게임을 하고 또 밤이 늦도록 게임하다 잠들고 여러 날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라" 그러려면...


남편은 희망 이를 불러 의류공장이 있는 현장으로 데려갔다. 열심히 일하는 벳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새롭게 마음을 잡도록 권면했다. 공장 사람들과 밥도 먹고 이공장 저공장에서 생산되는 옷들을 보여주며

코로나 상황 속에도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3개월 후 다시 하노이로 돌아왔다. 시간은 덧없이 잘도 흐르는듯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희망이 없어 보였으나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돋고 봄이 오듯이 희망이 에게도

올해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드디어 인터넷 쇼핑몰과 매장 사무실을 겸한 5평쯤 되는 옷가게 사장님이 되었다. 첫 출근 스스로 한다. 퇴근도 맘대로 한다. 그런데 혼자서 더 잘하고 책임감도 생겼다. 혼내고 다그칠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다. 우리에겐...


작지만 나만의 브랜드와 가치로 옷을 만들어 내고 싶다던 희망이의 꿈이 조금 일찍 기회를 만나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와 힘을 빌어 2021년 1월 매장을 계약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노이에도 갑자기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비상시국이다. 이 시국에 아버지와 아들은 일을 저질렀다. 불구경은 내 몫인가??


쌕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헬멧에 마스크를 쓰고 부릉부릉 신나게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출근한다.

주춤주춤 방황하는 시간이 있었으니 이제 신나게 달려가야 하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과연 아들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겁 없는 20대 아들의 베트남 속 살아남기를 응원하련다.


" 큰 꿈을 이루기보다 살아남기를 통한 작은 성공들을 모아 모아 먼 훗날 행복한 삶이 되리라! "


연료통에 연료가 떨어지면 달릴 수가 없으니 항상 주의하고 안전운행처럼 인생도 그리 살아주길 바란다.

돈을 아낀다고 조립식 의자와 책상을 주문해서 바닥에 앉아 조립하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반짝반짝 바닥 청소를 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아직 판매할 물건도 없는 텅 빈 곳에서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 그리고 조립식 옷걸이 두 개, 아들은 조금씩 작은 공간에 희망의 싹을 심어 가고 있다. '참 다행이다' 작지만 자신이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찾아서 오늘도 누가 뭐라 해도 자신만의 길을 달려갈 준비를 끝내가고 있다. 코로나 시국과 설 명절이 2주나 계속되는 이 시국에 아버지와 아들은 겁 없이 사업을 하려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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