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NO Problem

살아남기

by 아이리스 H


달달하고 맛난 까페라떼 한잔을 시킨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따뜻....




한국에서 사는 동안, 해외에 나가서 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나는 영어울렁증과 소심한 성격에 불안감도 많았던 터라 번번이 한국을 고집하며 살았다. 나의 편견과 생각은 네모에서 각이 다듬어져 둥글게 변하기 시작했고 바람 쏘이러 여행하듯 온 이곳 베트남 하노이에 둥지를 틀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영어를 아주 못한 건 아니고 시험을 치르면 B플러스 정도였으나 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 음음음... 버벅거리며,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문장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간단한 커피 한잔과 빵 하나를 시키는데 두근두근 떨렸다. 솔직히 중2 정도의 영어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문장이 나를 땀나게 했던 때가 있었다.


공부를 시작했다. 회화책으로, 단어 암기로, 그리고 유튜브의 원어민 수업도 들으며 마치 유학 온 대학생처럼 그러나 하얗게 지워지는 내 머릿속 영어 단어들과 문장들은 어디로 간 걸까? 말문이 막힌다. 그렇다면 여기는 벳남이니까 벳남어를 공부해야겠다. 생각하고 어학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두 시간의 수업과 숙제를 병행하며 나름 열심히 베트남어를 공부했다.


한 달 후, 두 달 후, 함께 공부하던 동생이 너무 어렵다며 벳남어 배우기를 포기했다. 사실 성조가 있어 중국어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4 성이던 중국어도 배워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6성의 복병을 만났다. 그럼에도 난 혼자서 끙끙대며 살아남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두 명이 다시 내 수업에 합류했다. 하노이 인사대에서 수업을 하다 너무 힘이 들어 어학원으로 옮겨 왔단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 수 없이 반복하며 우리는 나름 서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호호 하하 즐겁게 어려운 베트남어를 소화해 냈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거리로 나갔고 식당과 커피숍을 일부러 영어나 베트남어만 쓰는 로컬로 찾아갔다. 처음엔 서로 먼저 해보라며... 메뉴판을 보고 손가락을 짚으며 목소리는 자신감이 없어 작은 소리다. 그때마다 눈치 빠른 벳남 직원들 오케이 오케이!! 를 날려 주었다.



어느덧 7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두 권의 책을 마무리하고 예습과 복습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세명중 한 명이 갑자기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살아남은 나와 친구는 그 후로도 열심히 좀 더 공부했다. 하지만 나 또한 한국에 볼일이 자주 생겨 가고 오느라 긴 시간을 공부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에게 포기란 없다? 하지만 나는 포기했다. 벳남어 자격증도 따려고 했으나 버거웠다. 이 나이에 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공부를 하는 건지?? 안 해도 머릿속이 복잡했기에 영어도 베트남어도 백기를 들었다.


참 쉽고 편하고 행복했다. 한때는 나의 삶의 열정이 너무 세고 강해서 인간미가 없을 정도로 공부했었다. 이제는 인간미 철철 넘치는 삶을 살기로 했으니 세상도 나도 많이 변해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NO Problem!!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 급한 생리적 현상들 해결할 수 있고, 핸드폰 기능 번역기를 터치해서 소통할 수 있고, 천재적인 몸짓과 손짓, 발짓, 그리고 눈치까지 빠르니 짧은 어학 실력 티 안 나게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랍게 하였다.


제발 열심히 공부하지 말자. 슬슬 조금만 하자!


나의 필살기 살아남기 어학 실력에 그림은 필수다. 중요한 것만 정확히 잡아내어 그리는 그림 실력이 나름 뛰어나다. 깨알 칭찬이 나를 오글거리게 한다. 아마도 신은 나에게 한국말만 잘하는 한 가지 재주와 부수적으로 살아갈 방법으로 또 다른 재능을 주신 것 같다.


이렇게 타국에서의 삶을 즐겁고 재미있게 잘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말문이 막혀도 뚫어내는 재주와 발음이 틀려 어눌해도 부끄러움은 없었다.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까지 완벽히 갖추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는 타국 생활에 완전 잘 적응 중이며 소심함이 사라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이곳에서 이사를 하려고 준비 중~

티브이를 큰 걸로 사면서 집주인에게 바디랭귀지로 벽에 구멍을 뚫어 티브이를 설치하고 싶다고 말했다.

담백한 영어로 말해 보았으나 못 알아 들었다. 그래서 벽에 가까이 간 다음 두 손가락을 벽에 대고 뿌부북! 뿌부북! 을 외치며 손가락을 빙빙~ 두 번 정도 돌렸다. 집주인은 그제야 껄껄 웃으며 OK 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벌레와 파리 모기로부터 방충망을 설치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또 불발이다. 다시 차근차근 영어와 벳남어를 섞어서 말해 보았다. 이번에도 주인은 갸웃거린다. 종이와 펜을 가져다 그림을 그린다.

방충망 앞에서 쩔쩔매는 개미, 파리, 모기,.. ㅎㅎ 곤충까지 그리게 될 줄이야... 집주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통역사가 오기로 했었는데 급한일이 생겨 ㅠㅠ 나 혼자 집을 계약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는 게 힘이라 했던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가끔은 영어나 벳남어를 알아듣고도 모른 척한다. 그러면 알아서 척척척 문제가 풀어지기도 한다. 답답함을 즐겨보면 그 또한 괜찮았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 살던 내가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이 곳 베트남 여인이 되어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는 체, 잘난 체 못하고 그냥 살며시 미소를 뛴다. 그렇게 짧은 의사소통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다. 꿀 한 숟가락 듬뿍 먹은 벙어리여도 좋다. 다만 손해를 보거나 진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정도만 공부하는 걸로.. 나의 결론!! 목숨 걸고 어학 자격증도 굳이 따지 말자!


스스로 자존감 높이려고 공부하지 말자! 머리 다 빠지고 늙고 병든다. 게다가 백발이 될 수도 있고 한숨에 신경질 내느라 아까운 시간들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젊었을 때 어학 공부하고 정신 바짝 차려서 젊음을 불태워 주길 바란다.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온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해외토픽을 보면 70, 80, 90, 백세시대라고 하며 도전장을 걸고 대단함을 보여준다. 난 보통사람으로 행복하게 살아남기 하는 삶을 택했다.


오렌지 주스 플리스!! 조또이 느억 깜!! 영어와 벳남어를 자유롭게 쓰고 있다. Well done ~잘했어!!

KakaoTalk_20210202_093653908.jpg 저녁노을이 멋진 하노이 서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기 드문 황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