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리스 h Mar 25. 202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어떡해~~~

무슨 일이야?


때때로 우리는 인생 속 영화의 주인공처럼

깜짝 놀랄 들을 진짜로 경험하며 산다.


오전출근을 미루고 중요한 볼일이 있었다.

어젯밤부터 뭘 입고 나갈까? 고민했다.

줄무늬 원피스와 블랙 원피스를 손질한 후

베란다에 걸어두었다. 그리 두껍지 않아서

옷걸이에 걸어 잠시 바람을 쏘여주려 했다.


하노이 날씨는 하루예도 몇 번씩 바뀐다.

더웠다 추워지고, 쨍하다 비가 오고 

들쭉날쭉 변덕이 심하다.

그날 아침 (3월 19일)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비도 살짝 품었고, 하늘도 온통 잿빛이었다.


베란다에 걸어놓은 빨래들이 몇 개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있을 정도이다. 원피스 두 벌이

나란히 바람에 왔다 갔다 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점점 차게 불었다. 

설마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줄무늬 원피스가 그만...


펄럭이는 깃발처럼 왔다 갔다 하더니

옷걸이채 휙 ~쏜살같이 날아갔다.

뭐야~ 뭐야 바람이 벽틈사이로

나의 원피스를 채 가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타이밍 제로였다.

안으로 들일까? 말까? 불안했던 순간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베란다창틀과 벽틈 사이

바람이 지나간 자리~~

범인은 바람 바람이었다.


우리 집은 베란다 구석에 한 뼘~정도의 좁은 

틈새가 양쪽으로 있어서 베란다에 바람이

잘 통한다. 덕분에 화초도 잘 자라고, 빨래도

잘 마른다. 그런데 30층 높이 이 틈새로 옷이 

날아갔다. 황당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부랴부랴 겉옷을 걸치고 30층에서 1층으로

7시 50분~8시쯤 민낯에 헝클어진 머리로

긴 점퍼를 걸치고, 한국 아줌마는 어수룩하게

바람에게 놓쳐버린 원피스를 찾고 있었다.

바람에 내 몸마저 휘청거린다.


목을 뒤로 완전히 접고 위를  올려다본다.

까마득한 30층 높이에서 옷걸이채 날아간

원피스의 행방을 추측해 본다. 

'도대체 어디로 날아간 걸까?'

어이없이 허공만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동네 한 바퀴를 시찰 나온 것처럼 티 안 내고

산책을 즐겼다. 춥고 마음도 허하다.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말아놓은 원피스 허리띠만 남아있다. ㅠㅠ

에이~ 나도 모르겠다. 원피스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소파에 누웠다. 아이고 ~~

한번 입은 원피스인데... 아깝지만 어쩌겠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영화제목이 불현듯 떠오른 아침...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속담도 생각났다.

'오 마이갓' 별일이 다 있는 요지경 세상이다.

중요한 모임에 가야 하는데....

멘털이 탈탈 털려 일어날 수가 없다.

일단 한 박자 쉬어가야겠다.


검은색 원피스가

혼자 남아 소곤거린다.

'나라도 입고 어서 가라고 쩝쩝~^^'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러쿵저러쿵

"원피스 하나 사줄게 하하하..."

아들에게도 혀 짧은 소리로 쫑알쫑알

"원피스 하나 사드릴게요~~"

두 명의 남자 답변이 내 몸을 일으켰다.


"야호! ~~ 이런 횡재가...."


밉기만 했던 바람이 금세 용서가 되었다.

원피스 한 개 잃고, 두벌을 게 되었으니

허한마음을 달래며 중요한 모임에 갔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풀었더니...

"저는요,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다가 놓쳐서

바로 내려갔는데 이미 이불이 사라졌어요"

아~~ 이런 일이 현실이구나!


바람에게 보내준 원피스~

홀로 남겨진 허리띠를 바람이 또 세차게 

부는 날 보내줘야 할까요? 

인생은 바람 같은 거라지...

난 진짜 바람에 원피스를 보내 주었다.

잊어야지... 잊어버리자~~


삶에 가끔은 영화 같은 날이 있다.

힘든 날들은 바람결에 날려 보내주고

좋은 날들만 부여잡고 살고 싶지만 그 또한 

바람에게 보내줘야 하는 인생이란 걸...


오늘 불었던 강풍은 훈풍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꽃등심 먹는 날이 봄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