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대신 결정해 드릴까요?

by 강호연

“나 어제까지 신청해야 하는 복지물품 신청을 안 하고 갔어.”


옆 자리의 차장님이 말했다.


그 말은 보고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소연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마치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영수증을 내 책상 위에 툭 올려놓듯 던지는 말.

나는 그걸 받아 들고 구겨진 것을 펴야 할지, 버려야 할지 잠깐 멍해진다.


'어쩌라는 거지?'


차장님의 얼굴에는 아주 작은 기대가 섞여 있다.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기대인지, 아니면 ‘나도 이렇게 했어’라는 동조를 구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말이 흐릿하니 내가 할 수 있는 반응도 흐릿해진다.

“그럼 다음부터는…” 같은 원론을 던져야 하나,

“그게 규정상…” 같은 문장을 꺼내야 하나.


얼마 전에도 차장님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있었다.


“여행 다녀와서 부서에 기념품을 돌리려고 하는데,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고 싶어.”

“그렇게 하세요~”

“그럼 못 받은 사람이 서운해하겠지?”


주고 싶은 사람만 주고 싶긴 한데,

그렇게 하면 안 준 사람의 눈초리가 떠오르는 심리.


다 돌리자니 마음이 억울해지고,

안 돌리자니 그것도 또 모양이 이상해서 넌지시 나에게 마음의 짐을 넘기는 심리.


차장님은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나는 결국 답답함을 못 이기고 말을 던졌다.


“제가 대신 결정을 해드려요?”


말이 튀어나가는 순간, 그 문장에는 친절도 섞여 있고 짜증도 섞여 있었다.


“나도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해야지…”


그는 어떻게 할지 굳이 말하지 않고 대화를 마쳤고, 나는 결정이 궁금하지 않았다.


왜 나는 별 것 아닌 질문에 답답함을 느꼈을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봤다.


첫째는 기대였다.


상급자는 적어도 이런 종류의 흐릿함을 견딜 줄 안다고 막연히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선택이 불편해도 현명하게 선택을 하고, 결과를 감당할 줄 안다는 믿음.


둘째는 두려움.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고민이 내 쪽으로 넘어오면,

왠지 나 또한 그에 대한 책임을 떠맡게 되는 것 같은 두려움.


하찮은 고민을 떠넘기는 선배에 대한 실망감과

왠지 내 책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섞여

답답함이라는 감정이 탄생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옹졸해 보였다.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동료로서 작은 고민을 나누며 의지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 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좁아 보이기도 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마음이 편한 쪽으로 하세요~"


라고 다정히 말을 건네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