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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KIM Jul 22. 2020

코로나, 너 그리고 나

코로나 19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지도 어느덧 6개월.


그리고 찾아온 '코로나 블루'


그 6개월의 시간 동안 사회에서는 코로나 19 시대를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그중 코로나 19와  우울감(Blue)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겪으며 오는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라는 개념은 나에게 코로나 19라는 문제의 본질보다도 더 크게 와 닿았다.


코로나 19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자가격리. 그 격리의 시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롯하게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강제로 부여하였다. 


흔히들 알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에서 '사회'를 빼버린 우리는 문장만으로 만 살펴보면 한순간에 격리를 통해 그냥 동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그냥 그런 동물이 되어버려 우울감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개인, 즉 '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라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부분은 '너'와 '나'가 관계를 맺었을 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수많은 '나'가 있어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 사회라는 것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고려하고 위의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는 격리를 통해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 '나'는 있지만 그 연결고리가 사라져 버린 상태에 빠져버린 흔하지 않은 상황에 빠져버린다. 


물론 자가격리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코로나 블루라는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만 남은 상황 가운데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맞이했다. 이것은 마치 '나'라는 존재가 쉽게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동반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궁금한 게 생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다운 것은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일까?


어떤 존재를 설명할 때 한 가지 측면만 상요하여 존재를 설명할 때는 특이한 케이스 고려하여 생각하는 것보다 그 존재의 일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조금은 더 그것을 완벽하진 않지만 잘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마치 사막을 이야기할 때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비가 내리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물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곳'이 확실한 설명방법이 되겠지만 한쪽으로만 설명하게 된다는 가정을 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상기의 전제를 사용한다면 사회로부터 단절된 '나'의 모습보다는 일상 사회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더 '나'답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괜찮은 방식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나'와 결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과의 모습보다는 결속이 제대로 이루어진 사람들과 있는 편안한 '나'의 모습이 더욱더 나다운 모습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외로움 속의 '나'도 '나'이고, 어색한 관계의 사람들 사이에서 격식을 차리고 있는 모습도 '나'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상태인, 우리가 스스로 편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나'의 모습이 가장 나답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진정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내 주변에 나의 일상을 만들어주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동료들일 것이다.

Helena Lopes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오늘 우리가 자기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한다면 조용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표현은 동시에 상대로 하여금 상대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족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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