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은 누구나 시트콤 배우들이다

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by 최효안

내가 지치지 않고 즐기는 취미는 딱 하나다. 그건 바로 인간 탐색.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읽는 독서도 너무나 사랑하지만, 텍스트도 때론 질릴 때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책 보다 흥미진진하다. 내가 동시대 최고의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는 시트콤 연출의 거장 김병욱 PD는 나의 질문 "어떻게 그렇게 재밌는 시트콤 에피소드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시나요? "라는 우문에 이런 현답을 주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모든 인간은 다 시트콤 캐릭터랍니다."


아주 오래전 김병욱 PD의 말을 듣고 난 정말 주변 사람들을 마치 내가 시트콤 연출자가 된 듯 관찰하기 시작했다. 주변 인간 군상들이 모두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이라 생각하고 보니 평범한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그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말투와 제스처, 특유의 행동 패턴이 있는 아주 뛰어난 배우들이었다. 어쩜 그렇게 자신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드러내며 연기들을 잘하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김병욱 PD는 하나 더 촌철살인의 지혜를 주었다. "만약 인생이 너무 안 풀릴 때는, 내가 지금 엄청 시청률 안 나오는 재미없는 시트콤에서 망가지는 캐릭터를 맡아서 연기한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그랬다. 시트콤에서 망가시는 캐릭터는 처절하게 망가질수록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어설프게 망하면 안 된다. 실소가 터져 나오게 바보 같은 행동을 연속해야 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그럴 때가 있다. 지나고 나면 이불킥을 하게 되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말 그런 상황에서는 김병욱 PD의 조언이 생각 안 난다는 게 문제.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나중에 또 내가 그런 상황에서 이 글을 볼 수 있게. 그러나 분명 나는 이불 킥하는 상황을 또 겪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내가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망각할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한바탕 바보 같은 짓거리를 끝내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내가 얼마나 한심한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그런 상황을 '내 안의 발작버튼이 눌린' 시간이라고 명명한다. 발작버튼이 눌렸을 때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그런 캐릭터에 캐스팅된 지 조차 모른 채 신들린 듯 연기한다. 마치 무당이 내림굿을 할 때는 맨 발로 작두를 타고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발작버튼이 눌린 채로 인생이란 무대에서 최고의 바보 연기를 펼친다.


예전에는 그렇게 발작버튼이 눌린 채 행한 나의 모든 말과 행동에 후회만 가득했다. 그러나 처절한 자아비판을 하고 나서 나는 요즘 꽤 당당하다. 인생의 명연기를 펼친 것에 너무 자책하지 말자. 발작버튼이 눌린 채 방언 터지듯 나온 나의 말과 행동은 반성하고, 또 할 수 있으면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자. 그리고 다음에 발작버튼이 눌릴 때는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나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수에서 나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결국 삶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니까.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