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1년에 2번 나는 통렬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없어진 지 오래니까, 딱 2번이면 된다. '참회'와 '사계절'이 무슨 상관이냐고? 무척이나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나의 참회 대상은 마치 무한대 옷방이 있는 것처럼 사들여댄 옷과 가방 그리고 신발들이 주인공이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되는 시점, 반대로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되는 시점, 이렇게 2회에 걸쳐 참회는 길고 엄숙하게 이뤄진다. '참회'라고 쓰고, '정리'라고 읽는 이 과정은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연례 의식이다.
나는 정말이지 정리에 젬병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정리다. 책상을 정리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더욱 아수라장을 만드는 것이 특기다. 특히 책상에서 잊고 있었던 어떤 이가 준 카드나 편지를 읽고 하염없이 상념에 젖는 것은 기본이고, 분연히 다 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각종 업무 관련 서류들을 보면서 그걸 한창 작성하던 시기로 돌아가서 그때의 여러 감정을 끄집어내는데 선수다. 그리고 종국에는 더 난장판이 된 책상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간 그대로 방치하기 일쑤다.
예전 단골 카센터 사장님이 하신 명언이 기억난다. "멋쟁이 여성 운전자일수록 차 내부는 엄청 지저분한 경우가 많답니다." 난 멋쟁이도 아닌데, 언제나 진중하신 카센터 사장님과 마주 보며 웃었다. 20대 시절 내 차의 트렁크는 일단 열면 십 수켤레의 구두가 있었고, 가방과 옷이 한편에 있었다. 누군가 열어 보면 보세 옷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 생각하기 충분한. 물론 언제나 나름의 변명은 준비했는데, 방송기자의 특성상 언제 뉴스 리포트에 내가 등장할지 모르고, 또 기자 스탠딩(뉴스에서 보도하는 기자가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경우도 빈번하니 늘 다양한 옷과 구두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실 방송기자의 패션이야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 뉴스에는 상의에 단정한 블랙 재킷 하나 입으면 충분하다. 트렁크에 차고 넘치게 옷과 구두, 가방을 싣고 다니는 것은 모두 나의 패션에 대한 탐욕에서 기인한 것.
의식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옷. 옷과 자매지간인 신발과 가방 등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정도가 지나치다. 예전 나와 같이 쇼핑을 갔던 친구가 내가 블랙 목 폴라를 사려고 하자, "네 옷방에 이것과 비슷한 옷이 분명히 있다는 데 내가 내 손모가지를 걸게!" 아니, 비슷한 것은 똑같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블랙에도 얼마나 무한대의 차이가 있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사들이니 당연히 집은 옷에 잠식당한다. 결국 무게를 버티지 못한 행거들이 한밤중에 스스로 쓰러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장렬히 전사한 행거들이 생기면 결국 옷정리라는 엄중한 의식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얼마 전 결국 버티고 버티다 여름옷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 시작(정리를 하겠다는 작심부터 포함해서) 거의 한 달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완전 정리는 요원하다. 옷을 정리하면서 쇼핑 발작 버튼이 눌렸던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가 호되게 혼낸다. 그렇지만 내가 다시 쇼핑을 할 거라는 사실을 '미래의 나'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이번 연례 옷정리를 통해서 내가 나를 설득시키는 압도적 논리가 하나 생겼다. 그건 사고 싶은 옷이나 가방, 구두를 살 때 이걸 사는 건 결국 '이걸 파는 쪽의 재고를 내가 떠안는 것이다'라는 사실이다. 이 팩트가 그동안 그 어떤 사지 않을 이유보다 나를 유혹했다. 물론 이 단순한 팩트에 내가 얼마나 오래 승복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 논리가 나의 쇼핑 발작버튼이 눌리는 것을 한 번이라도 저지한다면 그것도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