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정리력 결핍자'의 변명

-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by 최효안

20대 초반 나의 모친이 나에게 남긴 명언. "효안이는 자기 방 정리는 못하는데, 주변의 남자친구는 너무 잘 정리해." 대체 이것이 과연 딸에게 하는 칭찬인지, 훈계인지 아직도 정말 나는 그 뜻을 모르겠으나! 여하튼 자식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역시 부모라는 팩트는 입증한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 방은 물론이고 뭐든 그것이 '물건'인 경우는 정리를 잘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 그것도 성별이 남성인 경우는 나의 모친의 말대로 참으로 정리를 잘했다. 아니, 정리를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작 지점에서 그냥 그분을 제자리에 놓고 나는 멀찍이 달아나기 일쑤였다. 나의 모친은 이성교제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진취적인 분인데, 일단 남녀 간에는 교제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내가 소개팅이나 미팅이라도 하는 경우는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은 여러 번 만나라는 중립적인 권고를 하셨다. 사람은 한번 봐서는 모르는 법이라고.


그러나 이런 모친이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는 막내딸인 나는 별로 모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단 첫인상이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안녕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몇 번 만나서도 끊임없이 결점 찾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조금의 이상함만 감지해도 또 안녕. 이런 행태를 거듭하니 모친이 앞의 명언을 남기신 것이다.


사람은 확 변하기 어려운 법. 나는 아직도 정리에 젬병인 '정리력 결핍자'지만, 그래도 나를 토닥토닥하고 싶게 향상된 부분은 있다. 예전에는 정리를 시도했다가 금세 나의 심각한 정리력 결핍을 다시금 깨닫고, 포기한 채, 그대로 방치하다, 결국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정리 안된 상황을 임시방편으로 가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리하다 벽에 부딪히면 일단 그대로 두고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포기는 하지 않는다. 구역을 정해서 오늘은 요기만 치운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한다. 그렇게 구역을 격파해서 정리를 하다 보면 결국은 마침내 다 정리가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여하튼 정리를 포기하지는 않는 것이다.


한 달도 넘게 지속되는 나의 여름옷 정리는 80% 정도 정리한 후 다시 답보 상태다. 여름옷의 세탁을 전부 마친 후에 또 정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나도 정리에 있어 계획이란 걸 세우고 그걸 수행하고 있다. '정리력 결핍자'의 치열한 분투. 일단은 포기하지 않는 나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다. 나란 인간은 칭찬을 해줘야 더 춤을 추는 사람이니까.


이성에 대한 정리도 달라졌다.


난 무려 내년 1월이면 사귄 지 7년이 되는 남자친구와 그런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만하면 나의 모친의 명언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효안이는 자기 방 정리도 그런대로 하고,

남자친구랑도 그런대로 잘 지내."


'그런대로'가 중요하다.


'완벽하게', '훌륭하게' 보다 '그런대로'가 좋다. [그런대로: 만족스럽지는 아니 하지만 그러한 정도로] 얼마나 좋은가!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그런 인생에서 완벽을 추구하면 나만 힘들다. 인생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한 인생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완벽보다는 '그런대로'가 좋다. 정리도 그런대로, 인생도 그런대로.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





작가의 이전글1. 진리를 쥐고 있는 자는 없다. 쥐고 있는 척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