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 버튼>
난 1년에 꼭 한 번 정기적 발작 시즌이 있다. 발작 대상은 단풍. 많은 사람들이 낙엽 물드는 시즌을 좋아하지만, 난 정도가 꽤 심하다. 단풍이 들랑 말랑 한 시점부터 나 혼자 몹시 분주하다. 행여나 한눈 판 사이 절정 시기를 놓칠까 싶어서다. 열심히 일기 예보를 검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년 꼭 가는 나만의 스폿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에 귀추를 주목한다.
단풍을 즐기는 나만의 스폿은 남산.
제 아무리 다른 곳에 만발하고 만개했어도 그 해 남산에서 내가 흡족할만한 단풍을 느끼지 못했으면, 나에게 그 해는 꽝이다. 2023년, 2024년 2년 연속 꽝이었다. 언제 물들려나 애태우며 자주 찾아갔는데, 11월 초순이 돼도 감감무소식. 결국 그러다 약간의 갈변만 하고 거의 '시퍼런 죽죽'한 채로 그냥 잎을 떨구었다.
사실 그때 꽤 놀랐다. 아무리 기후이변이라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물들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남산 북측순환로 대부분이 제대로 물들지 않은 채 그냥 엔딩이라니. 물론 나의 기준이 좀 엄격하다. 다른 이들은 '아니 그때 모두 남산 벚꽃, 단풍 이뻤는데?' 할 수도 있다. 언제나 만족은 주관적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내 성에 안 차는 남산의 단풍을 보면서 새삼 찬란한 풍광을 보여준 시절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를 절감한다. 그렇다.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낙엽 지는 자연의 변화가 사실은 기적인 것이다. 매년 되풀이되니까, 우리는 너무 둔감하다. 온 천지가 아스라이 몽환적인 흰빛으로 덮이는 봄, 정말이지 '을긋블긋'이라는 단어의 적확함에 놀라게 되는 가을은, 사실 기적인 것이다.
2024년 11월 말 아산의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그저 주말에 우연히 주변을 갔다가 들렀는데, 독립기념관 둘레를 크게 도는 단풍숲길이 있었다. 벌써 조성된 지 수 십 년 된 곳으로, 대부분 낙엽으로 떨어졌음에도 마지막 위용을 과시하는 단풍들이 있었다. 소멸 직전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절경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1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일부러 11월 초에 찾으니 역시 단풍이 절정이었다.
길고 긴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단풍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나의 '단풍발작증'의 유일한 치료제는 '눈이 부시도록 단풍을 보고 또 보는 것' 뿐이다. 2025년 올해치 단풍 섭취를 독립기념관에서 끝냈다.
그러자 단풍발작증은 완연히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홀린 듯 낙엽을 보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나의 단풍발작증은 앙상한 나무에 눈이 쌓이는 겨울이 되어야 완전히 멈추니까.
대체 나는 왜 이렇게 단풍에 발작하는 걸까?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꽃이 지는 것보다 낙엽이 지는 것에 더 발작하는 지점이 흥미롭다. 꽃이 지면 내 기준으로는 더 아름다운 싱그런 잎이 돋는다. 그래서 아쉽지도 슬프지도 않다. 오히려 초여름의 생기 넘치는 신록이 기대될 뿐.
그러나 단풍이 진다는 것은 완연한 엔딩이다. 잎은 떨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 죽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흙으로 돌아간 낙엽 덕분에 다음 해 비옥해진 토양에서 새 생명이 돋는다.
그러나 아직 나는 그런 자연의 순환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죽음에 너그럽지가 않다. 그저 싫고 피하고 싶은가 보다. 일단은 '단풍발작증'을 관망할 생각이다.
오래된 나의 증세이니, 그만큼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힌트다. 힌트가 많을수록 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이렇게 또 한 발자국 나는 나에게 다가간다.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