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 버튼>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슈즈홀릭(shoesholic)'이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찾아보니 슈즈홀릭의 정의가 [구두를 사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성향이나 태도. 또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나온다. 놀라울 만큼 적확하게 나를 표현하는 말이다. 내가 사전에 등재되는 정의에 딱 맞는 전형이라니! 언제나 그런 유형은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한 내가 사실은 '전형적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뭐든 쉽게 싫증을 잘 내는 내가 유일하게 절대 물리지 않는 장르가 바로 신발이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옷도 시큰둥해지면서 일절 쇼핑을 안 하는 금욕기가 있는데, 신발은 예외다. 신발에 대한 나의 욕망은 쉬지를 않는다.
바쁜 하루의 끝, 고된 하루를 정리하는 나만의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발 탐색이다. 신발을 담아둔 쇼핑몰 장바구니를 점검하는데, 그래도 나름 슈즈홀릭 내공이 있는데 바로 덜컥 사진 않는다. 그러나 '시기의 차이'지, 장바구니에 오래 담긴 물건은 '결국은 산다'.
이렇게 신발의 유혹 앞에서 백전백패하는 나의 애호 신발 변천사는 이렇다. 20대 초반 대학교 4학년 2학기, 운 좋게 기자 공채에 합격하면서 사회생활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무조건 하이힐이었다. 여성의 라인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7CM 힐을 기본으로 12CM 통굽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일단 뒷굽이 10CM가 넘는 힐의 경우는 앞부분 밑창에 일명 '가보시'라 불리는 굽을 덧대는 디자인인데, 이러면 뒷굽 높이가 낮아지긴 하지만, 결론적으론 지상에서 조금 붕 떠서 다니는 셈이다.
지금도 남겨둔 그때의 하이힐을 보면 경탄을 금치 못한다. 벗어서 바로 치한에게 흉기로 쓰기 아주 적합한 이런 엄청난 무기를 신고 다니고, 심지어 거의 러닝에 가까운 속도로 거리를 종횡무진하고 다녔다니. 나의 20대 체력과 무모함이 부러울 따름이다.
하이힐 이후에 꽂힌 건 미들힐이었다. 5CM 내외로 뒷굽이 완전 통굽이거나 또는 아예 날렵하게 빠진 것 등 굽의 디테일이 다양한 힐을 사들였다. 이런 미들힐은 특히 명품 브랜드에서 스테디셀러로 잘 만드는 아이템이라 이때 산 명품 미들힐들이 내 신발장에 아직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 열어보며 '지금은 안 신지만 언젠가는 너희를 신어줄게'하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한 희망고문을 전한다.
그 이후는 키튼힐이라 불리는 거의 단화에 근접하는 3CM 내외의 힐로 이어졌고, 그다음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화를 거쳐 지금은 힐과는 완전히 안녕했다. 아니, 힐과는 안녕했는데, 그렇다면 현재는 무슨 신발에 홀릭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각종 운동화다.
결국 ‘슈즈홀릭’의 최후는 슈즈, 즉 구두에서는 벗어났지만, 운동화에 탐닉하는 ‘스니커홀릭’(Sneakerholic)으로 이동한 것이다. 큰 범주에서 스니커즈가 슈즈 아니냐고 하지 마시길! 나에게 있어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니까. 그냥 구두의 집착에서 그나마 발에도 건강에도 좋은 운동화로 이동했으니 좀 더 긍정적인 거 아니냐고 우기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신는 것’에 발작적으로 집착하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저 신발에 대한 나의 강력한 욕망을 통해 나 자신의 숨겨진 무의식을 파악하는 단초를 얻을 뿐이다. 내가 신발을 왜 이렇게나 욕망하는지를 따라가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일단은 더 슈즈홀릭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