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할머니가 파는 나물

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버튼>

by 최효안

내 안의 발작버튼이 눌리는 경우는 참으로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즉흥적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생긴다는 것이다. 이 병은 불치병인데, 특히 나는 버스정류장 앞이나 건널목 근처, 지하철 역 인근에서 작은 좌판을 펼치고 물건을 파시는 어르신들(99% 할머님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 병은 아주 아주 뿌리가 깊어서 어릴 적 그런 분들을 보면 엄마 손을 끌고, 할머니들이 파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보다 훨씬 너그럽고 자애로운 나의 모친은 옥수수며 건나물이며 등등 한바탕 사주셨다. 물론 그렇게 사온 먹거리들은 한동안 우리 집 식탁에 올랐고, 온 가족들은 참 맛있게 먹었다.


나의 발작은 경우를 따져가며 일어나는데, 주로 본인들이 직접 텃밭에서 재배하신 야채나 농산물을 들고 나오시는 할머니들에 국한된다. 날씨가 몹시 더운 한 여름, 그리고 매서운 추위의 한 겨울에 얼마 남지 않은 야채를 파시려고 오도카니 앉아 계시는 것을 보면, 몽땅 사드려서 어서 뜨신 방안에 가서 쉬게 만들고 싶다는 발작 버튼이 눌린다. 그래서 심지어 정말 격식 있는 저녁 자리에 '검은 봉지'를 잔뜩 들고 간 적도 있다. 뭐 어떤가? 그날은 이름 모를 할머니가 직접 짜신 들기름을 저녁 모임 여러분께 나눠드렸는데, 두고두고 맛있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할머니에 국한됐던 나의 발작이 오늘은 '군인아저씨'들로 확장됐다. 20대에는 같은 또래인 군인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의 부친이 군인이셨기에,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존재들. 어린 시절 전방에 거주할 때는 부친의 운전병은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고, 부친이 특전사에 근무하던 시기, 그곳 수심 5미터가 넘는 수영장에 빠졌을 때 나를 구해준 것도 특전사 군인 아저씨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부친이 오래전 군에서 예편하신 이후에는 사실 군인들을 볼일이 거의 없었다.


오늘 오후 잠시 들린 프랜차이즈 커피숍 문 앞에서 한 무리의 '군인아저씨'들과 부딪혔다. 이젠 내가 '군인아저씨'라고 부르면 안 될 어린 얼굴에 솜털이 보송한 군인들. 잠시 휴가를 나온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좋은지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발작 버튼이 눌렸다.


키오스크에 선 그들에게 "괜찮으시면 제가 대접해도 될까요?"


"괜찮습니다"라고 마다하는 이들에게 나도 "그냥 사드리고 싶어서요"라고 하자, 또 발랄하게 본인들이 마실 음료를 누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마음속으로는 "우리 국방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지만,

차마 입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맛있게 드세요"라고만 하고 말았다. 경쾌하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합창하는 군인들. 각자 하나씩 음료를 들고 또 신나게 거리로 나서는 이들이 부디 즐겁고 보람차게 군 생활을 잘 마무리하길 기원했다. 가장 빛나는 젊음의 한때를 나라를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고귀한 거니까.


최효안 예술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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