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의 압도적 한 문장>
[최효안의 압도적 한 문장]
<윤형근의 기록>, 윤형근, PKM북스, 2021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는 알아도, 윤형근은 생소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윤형근은 김환기의 큰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김환기의 사위’로 불렸지만, 지금은 세계 미술계에서도 김환기가 ‘윤형근의 장인’으로 불릴 정도로 위상이 역전된 한국 단색화 거장이죠.
1928년생인 그는 일생 자체가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과 맞물립니다.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처럼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에 번번이 휩싸였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에는 국대안(국립대학교 설립안)을 반대하다 퇴학당하고, 이 일로 한국전쟁 중에는 보도 연맹에 끌려가서 죽을 뻔하고, 전쟁이 끝나자 또 징병을 피했단 이유로 감옥에 가고.
줄줄이 고난이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최고의 역경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1973년 숙명여고 미술 교사 시절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지인의 입시 비리를 고발하는 사건이죠. 박정희 정권 최고 권력가 이후락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니, 윤형근의 성정이 얼마나 대쪽 같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불의에 항거한 결과는 교사직에서 잘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보당국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는 것은 물론, 이후 오랜 세월 요주의 인물로 당국의 사찰을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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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작가 / 사진. 육명심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형근의 기록>은 이같이 비분강개로 가득 찬 시절을 통과하고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시기에 쓴 그의 일기와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그는 훌륭한 예술은 훌륭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종교처럼 추구한 예술가였습니다. 예술보다 인격이 먼저였죠. ‘‘절실하게’ 진선미를 추구하는 인간이 창조하는 기록‘, 그것이 그에게는 참된 예술이었습니다.
"예술은 그 무슨 의식이 아니다.
절실한 인간의 기록일 뿐이다."
- 윤형근의 일기, 1974. 8. 6.
같은 날 일기에서 그는 ‘영원불멸의 예술은 바로 예술가의 생각’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훌륭한 것이 아니고 그 생각이 훌륭한 것이다. 사람은 죽어지면 흙이 되지만 훌륭한 생각은 영원불멸한 것이다. 어찌 버러지 같은 생각에 훌륭한 생각이 있겠는가, 버러지는 버러지로 끝인 것이다."
- 윤형근의 일기, 1974. 8. 6.
5년 후에도 그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더욱 공고해지고 신념의 경지로 나아가죠.
"예술은 이론을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천진무구한 인품에서만 영원불변한 향기 높은 예술이 생성되는 것임을 절감한다."
- 윤형근의 일기, 1979. 8. 19.
그는 유행에 따라, 세태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절하는 인간과 예술을 경멸했습니다. 한마디로 “어쩔 수가 없다”라는 핑계 따위는 허용하지 않았죠.
"인간은 흑백이 확실해야 한다. 명암이 확실치 않으면 위선자다. 따라서 예술도 마찬가지다. 인간 그대로의 자기표현만이 진정한 예술일 수 있다."
- 윤형근의 일기, 1970년대 후반.
윤형근 작가 / 사진 출처. 한경DB
예술가로서 무르익을수록 그는 더더욱 온전히 마음으로 느낀, 진짜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예술이란 권투선수같이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오, 정치가 같은 지략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술이란 오직 인간의 가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 같다."
- 윤형근의 일기, 1980. 7. 5.
예술은 결국 예술가의 안목, 품격이 좌우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예술은 종국에 가서는 안목인 것 같다. 안목의 고하(高下)가 그 예술의 척도가 된다. 안목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안목이 없는(낮은) 사람이 제아무리 열심히 표현해 본들 그 결과는 그 차원(낮은)밖에 안 된다. 예술은 높은 품격을 지녀야 그 작품이 두고두고 볼만한 것일 수 있다. 품격이 없는 작품은 곧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높은 품격은 언제 보아도 머리와 가슴을 높은 경지로 이끌게 마련이다."
- 윤형근의 일기, 1984. 4. 23.
고귀한 예술을 위해 고귀한 인격자로 살려고 치열하게 자신을 정진한 끝에, 그는 결국 자신만의 독보적 예술세계를 정립합니다. 그것은 바로 천지문(天地門).
"내 그림 명제를 천지문(天地門)이라 해 본다. BLUE는 하늘이요, 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구도는 문(門)이다."
- 197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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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 'Umber-Blue'(1977), Oil on linen, 142x175cm / 사진. ⓒ 윤성열 /PKM 갤러리 제공
한국 근대 예술 전문가인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실장은 인간 윤형근에 대해 "큰 사람,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사람"으로, "소박하고 진실한 것이 가장 높은 경지라는 생각으로, 담백하고 꾸미지 않아도 멋스러운, 그런 삶과 예술을 추구했던 예술가"라고 평가합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소장품 상설전 2부 '한국근현대미술 II'가 절찬리에 진행 중입니다. 이곳에선 <윤형근의 방>을 따로 마련해 주옥같은 그의 대표작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참된 삶과 예술을 위해 일생을 분투했던 윤형근을 만추(晩秋)에 만나보면 어떨까요?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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