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안 에세이 <내 안의 발작 버튼>
춥다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는 강추위가 이번 주 내내 이어지고 있다. 정확히는 2026년 1월 20일 화요일부터니, 벌써 사흘째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추위가 좋다. 이런 날씨에 옷을 단단히 무장하고, 매서운 공기를 헤치며 종횡무진하는 일을 꽤 즐긴다. 코끝이 시리고, 볼이 얼얼하고, 발끝까지 아릴 정도의 추위. 그런데도 이런 날씨는 내가 지금 이 순간, 분명히 실존하고 있다는 감각을 그 어떤 상황보다 강하게 일깨운다. 그래서 좋다.
살다 보면 오래전부터 내려온 한자성어가 이토록 절묘할 수 있나 싶을 때가 점점 늘어난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는 말도 그렇다. ‘눈 내리는 깊은 겨울의 심한 추위’를 단 네 글자로 이만큼 정확하게 담아내다니. 수천 년 전에도 지금도,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누구에게나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추위를 굳이 이름 붙여 부르고, 그 말이 강추위를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남았을 것이다.
엄동설한에 대응되는 무더위를 가리키는 말도 있다. 초열지계(焦熱之際). ‘타는 듯한 더위’라는 뜻이다. 다만 이 말은 엄동설한만큼 일반적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동아시아, 특히 조선 시대의 삶에서는 여름보다 겨울이 훨씬 길고, 또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은 모든 것이 얼어붙고 농작물 생산도 거의 멈추지만, 여름은 아무리 더워도 곧 추수를 앞두고 있다. 그러니 한민족에게는 겨울의 ‘엄동설한’이 넘기 더 힘든 고비였고, 한여름의 ‘초열지계’는 그럭저럭 버틸 만한 시간으로 여겨졌던 건 아닐까.
정말 추울 때, 내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나만의 극복법이 있다.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생각이다. 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릴 때는, 언제나 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큰 추위라는 대한(大寒)도 이미 지났다. 다음 절기는 입춘(立春)이다. 엄동설한과 초열지계를 떠올리면, 이 추위도 다시 견딜 만해진다. 우리는 불과 반년 뒤면 또 너무 덥다며 호들갑을 떨 테니까.
최효안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