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장소 간의 정서적 유대, 특정 장소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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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효안의 아트 벨베데레
토포필리아, 어머니
전시 '나의 살던 동네는 – 마이 토포필리아(My Topophilia)'
서울 하이커그라운드, 2026년 2월 28일까지
토포필리아. 대부분 이들에게 아주 생소할 이 단어는 반세기 전인 1974년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중국 출신의 인문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이 자신의 저서 <Topophilia: A Study of Environmental Perception, Attitudes and Values> 에서 처음으로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토포필리아는 “사람과 장소 간의 정서적 유대를 의미하며, 특정 장소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을 뜻한다.
나는 우연히 이 개념을 접하고 바로 매료됐다. 나는 어떤 사람을 어떤 장소에서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포필리아는 ‘나’라는 인간을 해석하는 중요한 ‘틀’처럼 다가왔다.
서울의 대표적 중심가인 을지로,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공간에 ‘토포필리아’를 주제로 한 전시 <나의 살던 동네는-마이 토포필리아> (서울 하이커그라운드, 2026년 2월 28일까지)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연히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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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전시 <나의 살던 동네는 – My Topophilia> 내부 모습 / 사진. ⓒtrack9film/SOSIC
전시는 건축가 조병수의 서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의 평택, 밴드 ‘새소년’ 황소윤의 제천, 배우 겸 화가 박기웅의 안동 등 총 여섯 명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고향 또는 동네를 주제로 숏필름을 제작해 자신과 자신의 창작 근원을 탐색하고 있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특히 전시 예술은 그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들의 그 당시 정서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이 전시를 보러 갈 당시 내 머릿속은 모친 걱정으로 몹시도 뒤숭숭했다.
모친은 오랜 기간 병환 중에 있었기에, 자연스레 나는 모친이 소천한 후 어디에 모실지를 고민해 왔다. 부친이 국가유공자라서 모친 역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지만, 정신이 온전하실 때 모친은 수목장이나 또는 자신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안식에 들고 싶다는 얘기를 은연중에 하셨다.
경북 안동(安東). 모친의 고향이긴 하나, 워낙 일찍 상경하셨기에 나에게는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장소. 그런데 이 전시에선 예술가 박기웅이 꿈결같이 아름다운 영상과 내레이션으로 안동을 예술적 테마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홀린 듯 박기웅이 재현한 ‘안동’을 보고 있자니, 울컥해졌다. 저 아름다운 장소 어딘가에는 분명 발랄한 소녀였을 모친이 뛰어다녔으리란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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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전시 <나의 살던 동네는 – My Topophilia>, 박기웅 '안동', 트레일러 영상 캡처
막연했던 ‘안동’이라는 공간이 박기웅의 예술을 통해 갑자기 애정과 친밀감이 생겼다. 전시를 통해 나만의 ‘토포필리아’가 생겨난 것이다. 마치 이 전시가 나를 위한, 그리고 모친을 위한 전시 같이 느껴졌다.
그렇다. 모든 예술은 결국 가장 개인적인 지점에서 공감을 얻을 때 가장 보편적인 예술로 기능하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상당히 성공적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지난주 나의 모친은 소천했다. 나는 모친의 영원한 안식처로 안동을 택했다.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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