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그룹 곽재선 회장
곽재선, 곽재선의 창(窓), 김영사, 2025
“나를 위해 ‘너무’ 하지 말고, 남을 위해 ‘답게’ 살자.”
한국 사회에서 기업 총수만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도 드물다. 부러움과 존경, 의심과 냉소가 늘 함께 따라다닌다. 특히 여전히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 한국 사회에서,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성과 품격을 요구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KG그룹 곽재선 회장은 꽤 독특한 기업인이다.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동부제철(현 KG스틸)에 이어 커피 프랜차이즈 할리스(HOLLYS)와 언론사 이데일리까지 거느린 재계 50위권 기업 집단을 약 40년 만에 일궈냈다. 더 눈에 띄는 점은 그 긴 시간 동안 큰 구설 없이 단단하게 기업을 키워온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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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 KG그룹 회장. / 사진제공. 김영사
서구에서는 경영자 자서전과 평전 문화가 활발하지만, 한국에서는 기업가가 직접 자신의 철학을 정리해 책으로 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곽재선 회장이 40년 경영의 경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 『곽재선의 창』(김영사, 2025)은 꽤 반가운 기록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사람이 말하는 삶의 철학은 언제나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의외로 경쾌하다. 문장은 어렵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에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 사회의 ‘좋은 선배이자 지혜로운 어른’으로 역할을 하고자 하는 저자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기업 총수 특유의 엄숙한 자기 연출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는 ‘배수의 진’을 치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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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 KG그룹 회장. / 사진 제공. 김영사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계획처럼 될 확률과 계획처럼 되지 않을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을 것 같습니까? 저는 단언컨대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만들어 둬야 합니다.
— 『곽재선의 창』 중에서
플랜 A가 실패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플랜 B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의 현실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무작정 배수진을 치는 용기는 종종 무모함이 되고, 구성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의 전략과 달리 인생을 대하는 마음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바르고 굳세고 총명하게 만들 겁니다.”
—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담담하다’는 말은 차분하고 맑으며 욕심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에 저자는 한 가지 의미를 덧붙인다. 바로 평온함이다. 삶에서 억울한 일과 속상한 일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그 순간을 지나가는 태도라도 평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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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unsplash
그렇다면 담담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실제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 곽재선 회장은 의외로 단순한 두 단어로 설명한다. 바로 ‘너무’와 ‘답게’다.
세상을 살아보니 정말 문제가 되는 게 ‘너무’라는 단어더군요. 돈이든 일이든 감정이든 무엇이 든 그 앞에 ‘너무’가 붙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생기더란 겁니다.
— 『곽재선의 창』 중에서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삶의 기준은 이렇다. “나를 위해 너무 하지 말고, 남을 위해 답게 살자.” 이 책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바로 이것이다. 인생은 ‘너무’가 아니라 ‘답게’ 사는 기술이라는 것. ‘너무’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의 언어이고, ‘답게’는 관계를 생각하는 태도다. 돈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너무’에 빠지면 결국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된다.
반대로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중용(中庸)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또 하나의 통념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생의 미덕으로 이야기하는 ‘도전’에 대해서다.
진정한 도전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 곽재선의 창』 중에서
사람들이 흔히 ‘도전’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인생에서 누구나 넘어야 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영웅적 서사로 포장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곽재선 회장이 책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힘든 오늘을 버티는 누군가에게 다른 내일을 선택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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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 <곽재선의 창>, 김영사, 2025. / 이미지 제공. 김영사
K-문화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우리는 종종 그 토대를 잊는다. 문화는 공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경제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다. 한국 경제의 뼈대를 만든 것도 결국 기업가들이었다. 기업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사유를 기록할수록, 자본 위에 세워지는 문화 역시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문화와 경제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한 사회의 품격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이 책이 남긴 한 문장은 그 단순한 진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나를 위해 ‘너무’ 하지 말고, 남을 위해 ‘답게’ 살자.”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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