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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Oct 27. 2023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할 수 있겠죠. 첫 번째.

용기를 주는 대사들.

공모전에 떨어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특별히 좌절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혹시나 전화가 오지는 않았는지 휴대폰을 확인했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구나. 절절하다, 절절해.








건강검진이 끝나자마자 한 달 동안 끊었던 술을 마셨다. 아무리 건강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 맛있는 걸 못 먹고사는 인생이 과연 진짜 건강한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오랫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려면 건강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나는 일찍 죽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다고요. 아직 머릿속에만 가득하고 써내지 못한 글들이 너무 많아요. 진짜 재미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에게 당선 연락을 달라고요!


이번 공모전은 좀 특별하기는 했다. 처음으로 최종심에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수도 없이 내가 진짜 재능이 있는 것인가 의심해 왔고, 나를 갉아먹는 의문들과 싸우느라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종심에 올랐다는 건 내가 아예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 나 좀 멋있는 것 같아. 세상에. 

하지만 결국 나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나를 빼고 그대로 당선작 발표가 났다. 늘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축제인 것 같은 공모전 결과를 확인하곤 잠깐 멍해졌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이제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실 막 응모를 했을 때는 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관성처럼 목표가 생겼고, 기한이 되었으니 내 작품을 응모했을 뿐이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던 건 최종심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고 난 후였다. 일말의 기대는 언제나 큰 상실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힘든 순간에 나를 위로해 주는 드라마 속 대사들이 있었다. 주인공의 상황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또 아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판타지라서, 또 내가 한 번쯤 꿈꿔보던 장면의 대사라서, 그 모든 이유들로 위로를 받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항상 무언가를 해내곤 했다.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그래도 목표를 이루며 인생을 설계해 나갔다. 물론 종종 주인공이 왜 저따위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캐릭터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술을 한잔하고 약간은 상기된 채로 버스에 오르면 늘 이 대사가 생각났다. 


"너무 힘들었다가 성취감에 짜릿했다가, 그러다 또 실패하고 좌절하고, 죽겠다 한숨 쉬고... 또 그러다 웃긴 거 보면 웃고, 밥 먹으면 맛있고, 좋아하는 사람 보면 좋고... 이런 게 다 삶이겠지? 근데요 언니, 때론 이 모든 게 너무 고단해요. 이 모든 게 너무 힘에 부쳐."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속 대사다.

(tvN/ 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권영일/ 임수정, 이다희, 전혜진, 장기용, 이재욱, 지승현, 권해효 주연)

차현(이다희 분)은 술에 취해 한탄하듯 이야기한다. 삶이 너무 고단하고 너무 버겁다고. 

버스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 미친 듯이 불안하다가도 어떨 때는 뭐든 되겠지 싶어 마음을 놓기도 하고, 또다시 내가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웃고 떠들며 재밌게 놀기도 했다. 나는 이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누구나 이 세상이 버거울 때가 있다고, 그러니 잘 견뎌 보자는 다짐을 했다. 인생 다 그렇지 뭐. 주인공 서사엔 역시 삶의 지지부진함이 좀 섞여 줘야지.


차현에게 타미(임수정 분)가 말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잖아."


그리고 다시 차현이 말한다.


"맞아. 삶은 징그럽게 성실하고 게으른 난, 뭘 어떻게 할 수 없죠."


그래, 삶이 말도 안 되게 성실한 거야. 징그럽게 빨리 흘러간다고. 왜 내 속도를 맞춰주지 않는 거야? 흥.



 




생각해 보면 결국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과 기분이 바뀌며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 애쓰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꿈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사람은 다 자기가 빛날 때가 있고 그때가 지금은 아닐 뿐이라는 자기 위로를 했다. 최종심에서 떨어진 것도 내 운명이며, 더 극적인 성공을 위한 발판일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이 대사가 생각났다. 


드라마 <SEX AND THE CITY> 속의 대사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주로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 결별의 과정을 겪고 있는 여자들. 남자들은 작별인사 없이도 관계를 청산하지만, 여자는 기필코 결혼을 하거나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여자들은 왜 혼란을 벗어나 교훈을 찾으려 안달일까? 교훈을 찾는 건 고통을 잊기 위함이 아닐까?"


네, 맞아요.

나는 지금 좌절의 고통을 잊으려 지금 공모전에서 떨어진 것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젠장. 고통을 잊기 위해서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고요. 

자기 위로란 필요한 것이지만, 눈물 나는 것이기도 하구나.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잠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우리를 붙잡는 닻일 것이다. 닻을 올려 과거의 나를 떠나보낼 때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다."


또 한 번의 공모전에 실패한 과거의 나는 이미 없어져야 했던 것이다. 나는 그 후로도 바쁘게 아시안게임에 열광하고 사이버대 중간고사를 친 동시에 드디어 한국에 새롭게 릴리즈 된 <SEX AND THE CITY: AND JUST LIKE THAT 2>을 보느라 정신없었다. 역시나, 삶은 징그럽게 계속되고 나는 게으르게나마 또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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