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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효 Apr 07. 2023

한국에 외국인 친구가 놀러 온다면?

외국인의 시선으로 만난 광화문 일대와 서울

태국인 친구, Sand Pacharaprakiti


Sand가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Sand는 태국인 친구로, 우리는 2010년 미국에서 처음 만나 보스턴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중국계 미국인 가족이 운영하던 우리의 홈스테이는 조금 특이했는데 여자만 10명이었고, 국적이 모두 달랐다. 이탈리아와 콜롬비아에서 온 10대 친구들부터 20대 멕시코 자매, 30대 프랑스인 Anna, 남미의 흥을 가진 50대 아르헨티나 아주머니들까지 나이와 국적에 상관없이 매일 저녁이면 여자들의 수다타임이 이어졌다.

나는 또래였던 Sand와 금방 친해졌다. 홈스테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두 채의 집이 정원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내 방은 별채에 있어 Sand가 항상 건너왔다. (밤새 이야기를 해도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랑방이었다.) 주말이면 훌쩍 근교 도시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떠날 땐 아쉬움에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도 흘렸건만, 그 뒤에도 2-3년에 한 번씩은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가족이 함께 보는 사이가 되었다. 2017년에는 가족여행 시기가 겹쳐,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다 같이 만나기도 했다. 그런 Sand가 온다니,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2017년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두 가족이 다시 만났다 :)


어서 와, 한국은 오랜만이지?


Sand의 한국 여행은 이번이 벌써 4번째였다. Sand의 부모님과 남동생도 함께 왔기에 겸사겸사 연차를 냈다. Sand가 묵고 있던 코리아나 호텔은 집과 가까웠기 때문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어김없이 광화문에서 맞이했다. 오랜만에 광화문 직장인 모드가 아닌 관광객 모드로 서울 곳곳을 다녔다.

출근시간 대를 지나 경복궁을 가니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보였고, 평일 낮시간 북촌 한옥마을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한복 대여샵에서는 영어, 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직원들이 손님들을 상대했다. Sand 가족도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거닐었는데, Sand 어머니가 특히 좋아했다.

북촌 한옥마을 뷰, 직접 가보니 외국인들이 왜 오는지 알 것 같다.


Sand 가족이 한국에 올 때마다 기대하는 것이 있었으니, Korean Food와 쇼핑이다. 이번에도 서울 곳곳을 걸으며 매일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Sand와 남동생이 어느덧 광화문 지리에 익숙해져서 늦은 밤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호텔로 돌아갈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2만보씩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태국인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해 준 장소들을 갔는데, 갈 때마다 어김없이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과,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는 한국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Sand의 시선을 빌려 음식과 쇼핑 부문 best를 선정해 보았다.

 

K-Food


코리안 바베큐 a.k.a. 삼겹살, 목살, 돼지갈비


첫날 저녁은 'Korean BBQ'로 대표되는 삼겹살 집이었다. Sand 부모님이 소를 드시지 못하기 때문에 정한 메뉴인데,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Sand 어머니는 고기를 구워 쌈에 싸 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돼지갈비까지 부위별로 즐기며, 이후 매일 고깃집을 갔다.

저녁식사에는 우리 부모님도 함께 했다. Sand 가족이 2014년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 처음 만났고, 뉴욕에서도 봤기 때문에 벌써 세 번째 만남이었다. Sand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 모두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이제는 나와 Sand가 통역하지 않아도 번역 앱을 통해서 서로 안부를 나눴다.

점심으로 먹었던 철판 닭갈비와 찜닭도 인기가 좋았다. 태국에도 'bonchon'이라는 한국 치킨집이 있어 자주 먹는다고 했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는 위시리스트에 있던 '한강에서 치킨 먹으며 피크닉 하기'를 하기로 했다.

광화문역 1,8번 출구 방향에 있는 교대이층집
어머니들의 귀여운 소통 현장 :)


김치의 맛 a.k.a. 김치찌개, 김치전, 두부김치


일 년 내내 더운 태국이기에 Sand 가족은 한국의 날씨를 유난히 추워했다. 경복궁 투어 후에는 따뜻한 국물 음식을 원해서 김치찌개 집을 갔다. 태국의 똠양꿍과 비슷한 느낌일까, 매콤할 텐데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김치전과 두부김치도 막걸리와 함께 야무지게 소화했고, 김치가 유명한 명동교자에서는 김치를 몇 번이고 리필했다. 역시, K-Kimchi의 맛은 글로벌하게 통한다.  

광화문역 근처 한옥집(김치찜)과 명동역 근처 명동교자


K-Shopping


K-Cosmetic


한때 외국인들의 쇼핑 메카였던 '명동'에도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주 고객층이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던 명동은 길거리가 텅 비었는데, 이제는 호객행위를 하는 화장품 가게 직원들도 보이고, 길거리 음식들도 줄지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Sand는 K-뷰티에 관심이 많아서, 태국의 유튜버들이 추천하는 화장품들을 잔뜩 조사해 왔다. 삼청동에 있는 올리브영에 갔을 때는, 제품을 고민하고 있자 옆에서 쇼핑하던 다른 한국인이 더 유명한 것을 추천해 주면서, 가격 할인 혜택도 꼭 챙기라고 알려주었다.(한국 여행이 흥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의 정이 아닐까.)


K-Brand


코로나 이후 여의도에 오픈한 '더 현대 서울'도 좋아했다. 일반 백화점과 다르게 온라인과 편집숍에서 인기 있는 한국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고, Sand 남동생이 좋아할 만한 스포츠 브랜드와 남성 의류 브랜드도 꽤 많아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쇼핑이었다. (MZ세대를 겨냥한 K-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해 있는데, 실제로 개점 이후 150여 개가 넘는 신진 토종 패션 브랜드를 선보였다고 한다.)

북촌 한옥마을 근처에서는 힙한 K-브랜드들이 한옥 공간을 재구성하여 독특한 분위기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마침 방문 당일 오픈한 K-브랜드 샵에 가보니, 매장 안에 외국인들로 가득했다.(해당 브랜드의 모델이 블랙핑크 Jenny였다.) 

한 가방 브랜드는 홍대에 오프라인샵이 있는데 오픈런을 해야 인기제품을 살 수 있다고 했다. Sand도 오픈런에 도전했는데 줄 선 사람들 대부분이 태국인이었다. 그 외 동대문, 삼성 코엑스, 압구정 로데오, 고속터미널 등도 태국 친구들 사이 알려진 한국의 쇼핑 성지라고 한다.


여의도 더 현대 서울은 공간도 넓어 Sand 아버지는 휴식공간에 계셨다.


우리가 친구인 이유


여행 마지막 날, 우리가 친구인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광화문에서 신논현역을 가야 했는데, 그만 전철을 거꾸로 타버렸다. 수다를 떨다 둘 다 전철을 거꾸로 탄 것도 몰랐다. Sand 남동생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뒤늦게 전철을 갈아타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Sand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본인한테 여러 번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고, 나 또한 그랬다. (Sand 남동생은 누나 둘이 같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렸다.)


Sand는 소위 태국의 '하이쏘(High-society)'로 태국 서울대로 불리는 '츌라롱건 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를 졸업하고 현재는 태국 은행에 속해 있는 Tech company에서 일하고 있다. 태국에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사업을 하고 있어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고민된다고 했다. 소위 낀세대로 신입사원과 윗 세대 사이에서 서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국적은 달라도 고민은 비슷한가 보다.


태국의 몇 가지 특이한 문화 중 하나는 '츠렌'이라는 별명을 부르는 문화이다. Sand의 본명은 'Sophason Pacharaprakiti(쏘파손 파실라파키티)'이다. 태국인들은 가족 단위로 같은 성을 쓰는데, 이름과 성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본명 대신 닉네임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블랙핑크 리사의 본명은 'Lalisa Manobal(개명전: 쁘란쁘리야 마노반)'이고, 2PM 닉쿤은 'Nichkhun Buck Horvejkul(닉치쿤 벅 허르베지쿨)'이다.

전철 잘못 탄 기념샷, 보스턴에서도 종종 일어나던 일이었다.


공항버스를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바빴고, 금방 또 볼 것처럼 헤어졌다. Sand 가족은 주로 겨울에 한국에 와서, 항상 한국의 봄 벚꽃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Sand네가 떠난 며칠 뒤 벚꽃이 만개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예년보다 빨리 핀 벚꽃을 보고 Sand는 'Seriously..?' 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Sand가 마지막에 건네준 꽃과 함께 진짜 봄이 왔다.

광화문 교보문고 앞 만발한 벚꽃과 마지막 날 Sand가 준 꽃


H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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