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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Dec 28. 2016

타임즈 스퀘어, 맨하탄의 심장

화장이 여자의 자존심이라면 조명은 도시의 자존심이다.불꺼진 타임즈스퀘어,불꺼진 피카디리 광장, 불꺼진 와이탄,불꺼진 명동을 상상해보라. 조명은 도시의  생명이다.  맨하탄의 한복판, 하루 유동인구만 36만명에 연간 1억 3천만명이 다녀간다는 타임즈 스퀘어는 마치 쉬지않고 뛰는 심장과 같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조명의 천국이다.  그런데 지난5월 캐피탈 뉴욕(Capital New York)과 CBS에서 이 불야성의 천국이 마침내 그 끝을 볼 때가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전부는 아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네온사인을 철거해야만 할 것이라는 얘기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얘기지만, 그 전말은 이렇다.


 미국에  바야흐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던 1900년대 초,더 정확히는1913년, 인디애나 출신의 사업가 칼 피셔는 자동차로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아직까지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지역 혹은 기껏해야 뉴욕과 워싱턴,뉴욕과 보스톤 정도의 거리를 달리는데 활용되었을뿐, 대륙횡단이나 이에 버금가는 장거리 용 교통수단으로 인식되지 않았다.여전히 그런 장거리는 기차가 대세였던 것이다.  그의 구상은 완전히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이미 있는 도로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였다. 테오도르 루즈벨트,우드로우 윌슨 등이 칼 피셔의 이 대담한 제안에 동참하였으나 당시 자동차 판매로 주가를 올리던 포드는 참여를 거부한다.도로는 연방정부의 소관사항이라는 것이 그의 반대의 변이었다. 


각 지역 답사를 거쳐  1913년 10월 31일 마침내 미국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관통하는 도로의 명명식이 열림으로써  칼 피셔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링컨하이웨이라고 명명된 이 횡단 도로는 동쪽의 뉴욕 타임즈 스퀘어와 서쪽의 샌프란시스코 링컨 파크를 연결하는 총 연장 3389마일(5454km)의 도로이다.  개통 당시  13개주, 120여 카운티, 600여 도시와  연결되었던 것이 그 후 몇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은14개 주를 지나게 되어 있고 일부는지금  80번 고속도로와 겹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번잡하고 느린 타임즈 스퀘어에 링컨 하이웨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그런데 이곳이 2012년 연방고속도로(FederalHigh System)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그보다 한참 전인1965년, 연방 정부는 고속도로 변에 설치하는 광고판의 크기를 제한하기 위해 도로미화법(Highway BeautificationAct)에을 제정하였고,그 법에 의하면  도로로부터 660피트 이내에는1200평방피트 이상의 빌보드를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이다.따라서 고속도로의 일부로 편입된 타임즈 스퀘어의 전광판들은 이 규정에 따라 규모를 줄이거나 철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입법 실수로 자본주의의 심장, 타임즈 스퀘어의 네온 사인이 박동을 멈춰야할 지도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One Times Square 빌딩,  광고판으로 둘러쌓여 있는 건물. 뒤쪽의 유리로 된 것은 다른 건물이다. 

타임즈 스퀘어는 맨하탄 센트럴 파크의 남쪽  7가(7th Ave)와 브로드웨이(Broadway), 그리고 42가(42nd St)와 47가(47th St)의 교차로를 일컫는 말이다. 1904년 뉴욕 타임즈의 발행인 아돌프 옥스(Adolph S. Ochs)는 롱에이커 스퀘어(Longacre Square)와 42가(42nd St)에 있는 팝스트(Pabst) 호텔 자리에 높이 120M(395피트), 25층의 사옥 건물(OneTimes Square혹은 1475 Broadway)을 새로 짓고 이곳에 입주한다.  그 후 그는 당시 뉴욕 시장 조지 맥클레란(George McClellan Jr.)를 집요하게 설득하여  지역의 이름을TIMES SQUARE로 바꾸도록 한다.그 결과 롱에이커 스퀘어는  1904년 4월 8일 지금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타임즈 스퀘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이 오래된 타임즈 빌딩의 신년 카운트 다운을 보기 위해 100만명이 타임즈 스퀘어에 몰려들고, 수천만명이 CNN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보신각처럼 적어도 1년에 한차례 타임즈 빌딩은 전 미국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볼드롭(Ball Drop) 이벤트는 타임즈의 사주 옥스의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신문사 프로모션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그가 빌딩 꼭대기의 깃대를 이용하여 카운트 다운에 맞춰 볼을 떨어뜨리는 이벤트를 생각해 낸 것이다!  1907년 12월 31일 최초의 이 재미있는 이벤트를 구경하기 위해 20만명이나 되는 구름같은 인파가 타임즈스퀘어에 몰려들었다. 매년 12월 31일 오후11시 59분에 시작되어 60초동안 41M의 깃대를 타고 내려온 볼은 이듬해 1월 1일 00시 00분에 빌딩 꼭대기에서 멈춘다(이상 미국 동부 표준시).


전 세계에서 매년 1억2천만명 이상이 발자취를 남기고 가는 이곳은 그래서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다. 네온 사인이 내뿜는 수만번의 반짝임은 기업들의 소리없는 총성인 것이다. 이 광고의 전쟁터에  쏟아붇는 광고비가 얼마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2012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25층의 구 타임즈 빌딩(One Times Square) 이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연간 총  2천 3백만불이었다고 하니 어림잡아 계산해도 수억달러는 족히 될 듯 하다. 광고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니, 게다가 이미 자리잡은 기업들은 물러서지 않고, 그 결과 광장을 향한 조그만 자투리 공간에도 전광판은 여지없이 비집고 들어간다.


사람이 모여들어 광고가 살아 숨쉬고, 그 광고를 보기 위해 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곳.CBS와 뉴욕캐피탈의 보도 이후 다시4개월이 흐른 지금, 타임즈 스퀘어의 네온 사인은 여전히 누군가의 주머니를 향해 유혹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누가 이 자본주의의 심장을 멈추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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