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차 창 밖으로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장마철이라 쉴 새 없이 퍼 부는 것처럼 내리는 비 때문이다. 비하면 왠지 모르게 낭만적인데, 비로 인해 뭉쳐진 물의 무리는 무섭다. 거대한 물만 보면 언제나 그해 여름이 두려움으로 떠오른다.
그해 여름 우리 가족은 단란하려 했었다. 휴가라는 것으로 물놀이를 갔었으니까. 고모네 가족과 함께 화덕, 커다란 양은 솥, 수박, 참외 그리고 생닭으로 짐을 꾸렸다. 이불만큼 널찍한 튜브도 가져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가족의 여름휴가가 아니었나 싶다. 내 기억 속의 여름휴가는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만큼 우리 집은 각박했나 보다. 또 그 시절은 대부분의 집들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변변한 수영복도 없이 후줄근한 티셔츠에 반바지가 물놀이 복장이었다. 신이 나서 물속을 수도 없이 드나들며 나를 까무잡잡하게 만들었다. 더 할 수 없이 평화로웠고 즐거웠다.
우리는 푹 삶아진 닭과 수박, 참외를 배불리 먹었고, 아버지는 사랑하는 술을 만족스럽게 마셨다. 술은 아버지에게 지나친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 거나해진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졌고 아이들에게 튜브를 태워 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엄마는 위험하다고 말렸겠지만 막무가내로 억지를 썼을 것이다. 운동신경이 아버지의 의지대로 제어 할 수 없어 비틀거렸는데, 우리들은 몰랐다. 배도 아닌 튜브에 올라 앉아 음주 운전자에게 몸을 맡기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알기에는 어렸다. 그저 들떠서 튜브에 올라탔고, 잠깐이다 싶었는데 아버지가 흔들렸고, 균형 잃은 튜브는 뒤집히고 말았다.
나는 팔다리를 마구 내두르며 꼬르륵 꼬르륵 물을 먹으며 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물 밖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겠지만 죽을까봐 허우적대던 물속에서의 나 혼자만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어린 마음에 ‘죽는 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으니까. 기억은 거기서 멈추었고 정신을 잃었는지 깨어났을 때는 살아서 누워 있었다. 아이들을 물속에 빠뜨리고 당황한 아버지는 조카들, 내 사촌 동생들을 먼저 건져 안전하게 한 뒤, 딸인 나를 맨 나중에 꺼내주었다고 했다. 분명 엄마와 한바탕 했을 것이다. 출발할 때는 유행가에 있듯이 비둘기처럼 다정한 모습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섬뜩한 경험으로 모두들 가라 앉아 있었다. 나를 제일 먼저 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아버지가 참 야속했었다. 그것까지 이해하는데는 긴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십 년 전 여름 새벽 수영을 다녔다. 반년이 지나도록 물에 뜨지를 않았다. 넷이서 같이 시작했는데 세 명은 중급반, 고급반으로 올라가며 능숙해졌는데 나만 초급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뜨는데 도움을 주는 스펀지를 허리에 묶어, 애 업고 수영하냐는 놀림까지 받았다. 강사는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고 힘을 빼라고 강조했지만 힘 빼고 어떻게 발차기를 할 수 있냐고, 나 같은 사람도 마스터하기는 하냐고 매일 같은 질문만 반복했다.
결국은 자유형도 마치지 못하고 키판들고 발차기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물에 닿기만 하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아프다 나중에는 수영을 안가도 며칠 계속해서 아팠다. 검진을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수영을 그만두자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느끼지 못했던 물에 대한 공포가 내 심리 밑바닥에 눌러 붙어 있었나 보다. 몇 년 동안 새해만 되면 일 년 계획에 수영을 적어 보지만 여태껏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한번쯤 ‘내 자식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무서웠지. 미안하다.’ 라는 말 한마디라도 들었으면 남들처럼 쉽게 수영을 배울 수 있었을까. 과묵했던 아버지, 어쩌면 대화의 방법을 몰랐을지도, 아니면 가부장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내 마음에 꽁하고 박혀 있다. 그래도 부모가 된 후 자식이 잘못되었을까봐 가슴을 쓸어내렸을, 딸이 무사해서 안도의 한 숨을 쉬었을 아버지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름만 되면 자주 떠오르는 어두운 장면은 어쩌지 못한다.
물속을 유유히 헤엄칠 수만 있다면,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서운하게 남아 있는 응어리가 녹을 것 같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것만 같은데. 그러면 그해 여름도 밝은 빛깔의 추억으로 바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