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삶을 바꿨다
아기가 낮잠에 들면,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집 안이 텅 비는 듯 고요해지는 그때가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도, 잠시나마 나를 들여다보며 지금의 삶을 기록한다.
나는 늘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이 넘쳐서 행동이 더뎠다. 작은 몸에 큰 머리를 이고 달리는 사람 같달까? 머리는 앞서가는데 몸은 따라가지 못해 자꾸 넘어지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한 걸음 떼는 데 오래 걸렸고, 그 사이 마음은 쉽게 조급하고 답답했다.
몇 해 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스스로도 정말 해보고 싶었고, 애정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템 후보만 벌써 열번은 바뀌었고, 어느 것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디자인 스튜디오 역시 제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느 한 곳에 몰입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듯한 답답함이 마음 한편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나는 일은 잘 벌리지만, 끝맺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이루어냈다고 말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디자인도, 공부도, 살림도, 요가도, 뜨개·그림·식물도.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또 조용히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조금이라도 오래 버티고 싶어서 처음엔 체력을 길러보려 했다. 격한 운동은 자신이 없었고, 조용히 숨부터 고를 수 있는 요가를 선택했다. 매일 하지는 못했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매트를 펼쳤다. 천천히 숨을 고르다 보면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요가는 나에게 뒷심을 길러주는 훈련이자 잠시 쉬게 해주는 쉼이었다.
요가를 하며 느낀 감각은 일상의 다른 부분들과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뜨개를 하며 한 코 한 코 엮는 과정이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줬고, 식물을 돌보며 ‘각자 다른 속도’의 의미를 배웠다. 어떤 식물은 햇빛 아래에서 잘 자라고, 어떤 아이는 그늘을 더 좋아한다. 뜨개는 느리고, 식물은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대신 서두르지 않아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란다. 나는 그 느린 움직임 속에서 정성껏 삶을 짓는 방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집 안의 물건도 줄이고 있다. 입지 않는 옷부터 버리고 주방 살림을 덜어냈다. 물건을 관리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 줄어들자 마음도 시간도 한결 가벼워졌다. 형태는 비워졌지만, 남은 것들은 더 또렷해졌다. 요가, 식물, 뜨개, 비움. 다 서로 다른 이야기 같았지만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정성껏, 느려도 질기게, 결국은 단단하게.
나는 오늘도 이 과정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변화는 작고 느릴 수 있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삶은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기록은 그 흐름을 붙잡아 두는 방법이자 내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나처럼 생각이 많아 속이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어보세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