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니, 길이 보였다.

나답게 살기 위한 10년간의 과정

by 이효진

어릴 적 나는 “나는 못할 거야”라는 무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잘하려는 마음보다 못할 거라는 전제를 먼저 세웠고, 그것은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몇몇에게 들은 “니가?”라는 의심이 담긴 표정과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이후의 모든 시도 앞에서 나를 위축시켰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은 진짜 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든 주문이었을 뿐이다.


대학교 1학년 무렵, 나를 옭아매던 주문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반복되는 무기력 속에서,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감정의 바닥에 있을 때마다, 그 원인을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언제 가장 즐겁고 언제 가장 힘든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해.


10여 년간 나를 관찰하며 알게 된 게 있다. 사람들과 처음 만날 때는 사교적이지만, 오래 부대끼는 환경에서 필요한 사회성은 약했다. 밤에는 집중도가 높지만, 아침엔 정신을 깨우는 일조차 버겁다. 다만 전날 잘 자면 다음 날 아침도 개운하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여전히 충분히 자지 않으면 하루가 금세 흔들린다.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지만, 잘 지키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은 마감 직전까지 미루지만, 마감을 앞두고 몰아치는 집중력으로 어떻게든 해냈다. 시작은 거침없지만, 끝맺음은 늘 애매했다. (이런 패턴을 보며, 지금도 ADHD가 아닌지 의심중이다.) 그럼에도 다시 이어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나를 관찰하는 일은 일상으로 번져갔다.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의 상태을 느꼈고, 식물을 돌보며 성장의 속도를 배웠다. 일에서는 나만의 집중 흐름을 찾았고, 뜨개질을 하며 반복해서 천천히 쌓는 시간의 힘을 알았다. 그 느린 취미들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리듬에 맞는 하루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기의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한다. 해야 할 일은 아기가 자는 시간에 집중하고, 아기가 자는 시안에 중요한 일을해야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에너지를 아끼는데 집중한다. 수면을 방해하는 오후 카페인은 섭취 하지 않는다, 일찍 자는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큰 계획은 작은 실천 하나를 한다. 업무는 마감일보다 여유 있게 잡고, 집안일도 미루지 않는다. 그때그때 치우고, 버리고, 제자리에 둔다. 삶에서 제대로 하는 모습이 일에서도 더 나아간다면 내 인생의 모습에도 반영 될거라는 믿음으로. 누군가는 초등학생 수준의 해결책이라 하겠지만, 나에게는 피를 새로 바꾸는 것 같은 큰 변화였다.


그래서 선택한 디자인 프리랜서 삶은 참 만족스럽다. 나의 속도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친절하게 일할 수 있으니까. 사실, 프리랜서 삶의 모습은 대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그리던 모습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라면 남들과 다르게 사는 모습이 겁나서 시도하지 못했을 텐데, 지금은 다른 형태의 삶도 두렵지 않다. 나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이해하며 다듬는 편이 나에게 맞았다. 나의 특징들을 인정하니 길이 보였다.


나는 10여년간 uxui디자이너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살고 있다. 나를 이해하는 일도 어쩌면 같은 과정이지 않을까. 현상을 관찰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더 나은 방향을 실험하는 일. 컨디션을 조절하듯, 마음의 리듬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결국 나를 움직이는 건 완벽히 해결된 답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그 느린 시도들로도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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