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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Apr 15. 2024

좁은 길

-오노레 도미에: 외롭고 당찬 돈키호테의 길

좁은 길


"여기 네 앞에 화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 그는 무엇보다 섬세하였던 예술가/ 그의 존재는 웃음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고 한 현인으로서 그는 또한 예연자였다.// (...) 그의 무모한 익살은 오직 가면,/ 이를 악물고 참는 고통이요/ 그의 심장은 따뜻한 햇빛으로 빛난다./ 천진난만하고 활달한 웃음 속에서." 샤를 보들레르, <오노레 도미에의 초상에 바치는 시>



해는 뉘엿뉘엿 지고 붉은 하늘 위로 까마귀 떼들이 시끄럽게 난다. 그 아래 말 탄 두 사내가 좁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고 있다.

앞장서 가던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랜턴을 머리 위로 높이 든 채 말없이 눈앞의 전경을 바라본다. 밀려오는 어둠과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할 여정 앞에서 막막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그 뒤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달그닥달그닥 걸음을 뒤쫓는 사내의 모습은 더욱 깊은 실의에 빠져있다.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의 풍경이다.


Honoré Daumier, Don Quixote and Sancho Panza, 1866-1868



그림은 도미에가 사실주의 화가로 평가받는 것이 의아할 만큼 그의 내적 심상으로 전율한다. 그림의 강한 콘트라스트와 형태를 잠식하듯이 진동하는 색채는 오히려 표현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과장된 원근법으로 화면을 가득 압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비애감에 젖었으나 어쩐지 웅장하기까지 하다.


화가는 현실과 꿈을 통합하지 못한, 그리하여 조롱과 비웃음을 산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어떤 영웅적인 면모라도 본 것일까?


도미에는 오늘날에 중요한 리얼리즘 풍자화가로서 그 위상이 높지만 생전에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신문에 삽화를 그리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던 도미에의 현실은 불우와 가난과 자기 침전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돈키호테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평생에 걸쳐 반복적으로 그렸단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나날이 쇠약해 가는 체력과 사그라드는 용기, 그리고 생활의 쪼들림 속에서 초라하게 저물던 도미에의 인생은 마치 그림 속 돈키호테의 모습처럼 지치고 힘겨웠을 테니.

누구의 말대로 화가와 작가란 직업은 현명한 선택이라기보다 매력적으로 보여 선택할 때가 더 많은 것이라면, 그 선택으로 수반된 모든 한숨과 고통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일지 모른다.

그 십자가 어깨에 지고 가는 길에 수다쟁이들과 세속현자들의 충고 또한 감수해야 한다. "답도 없는 길을 고수하는 거, 그거 신념 아니고 허영심이야. 지금이라도 그 헛 된 일은 접고 현명하게 굴어."

권위와 경륜으로 무장한 세속현자가 건네는 교훈과 충고에 젋은 예술가는 더 이상 모험하기를 원치 않고 의지가 꺾이기 십상이다. 다시 돌아가야 할지, 목표를 수정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들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어찌 절망하지 않겠는가? 먹고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떡으로만 살겠는가?*


아마도 도미에는 이러한 고민과 결론 끝에 돈키호테가 나선 길, 꼭 마법에 걸린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나선 길에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여로를 겹쳐 봤던 게 아닐까 싶다.

실망과 의심과 조소와 절망이 진을 치고 있는 그 길에서 우리의 서글픈 영웅은 어떤 빛을 바라봤던 걸까?

인적이 드물고 협착하여 좁은 길,** 그 길 끝 어딘가에 이르고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 : 25)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   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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