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가니 택배 박스가 있었다. 받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은 택배 박스를 신나게 뜯었다. 박스 안에 있는 책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우와! 책 표지가 너무 이쁜데?, 그런데 너무 두껍네’였다. 책의 두께를 보며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읽을 수 있을까?’였다. 왜 이 책이 선정된 거지? 하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독서량이 상당하신 어느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겠다고 하시며 이 책을 추천하셨었다. 선생님께서는 재미는 있지만 책의 두께가 많이 두껍다고 하셨다. 주변 선생님들께선 이번 달 도서가 얇은 책이라 금방 완독 후 시간이 많이 남았었고, 배송비가 붙지 않는 책값도 만족스럽다며 우리는 겁도 없이 723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9월 도서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임에서 거의 막내인 나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의 시작은 주인공 알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위원회에서 백작은 현재 거주 중인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고 스위트룸에서 허름한 하인용 다락방으로 거쳐를 옮기게 된다. 이발을 하는 도중 콧수염을 밀어버리게 되는데, 이 일로 9살 소녀 니나 쿨리코바와 호텔 이곳저곳을 숨어들며 추억을 만든다. 후에는 그녀의 딸 소피야를 키우게 된다. 로스토프 백작은 호텔 내 보야르스키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호텔에서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우정을 쌓고 여배우와 연인이 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있다면, 여동생 옐레나의 10주기 기일에 자살을 하려고 했던 백작이 호텔 잡역부 아브라함이 권한 신선한 꿀에서 고향의 향을 떠올리고 마음을 돌리게 되고, 호텔 식당 보야르스키에서 웨이터 주임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또 백작에게 소중한 친구였던 니나가 맡긴 딸 소피야를 16년이 넘도록 키우는 과정이다. 소피야를 양육하게 되면서 백작의 삶이 달라졌고, 소설의 마지막과도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소피야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해 조언하는 부분은 뭉클하기도 했다.
최고의 문장은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이다.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고 호텔 내에서만 생활했어야 하는 백작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책은 두껍지만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백작이 항상 유지하는 품위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 요리를 음미하면서 맛을 묘사하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호텔 안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백작이 만나는 호텔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 주방장 에밀, 여배우 안나, 총지배인 비숍 등 과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리고 책을 다 읽으셨다면 책 표지의 그림들도 유심히 보길 바란다. 벌과 벌집, 개 두 마리를 끄는 키 큰 여인, 시계, 열쇠 이미지들을 보면 미소 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