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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arus Jan 17. 2022

너에게 띄우는 편지 -4

D+4

Dear J,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야.

오늘은 네가 세상에 나온 지 5일 째 되는 날이야!


지금은 새벽 4시야.

옆에서 쌕쌕거리며 코자는 너를 바라보며 네가 잘때 나도 얼른 잠을 좀 자야하는데 싶어서 억지로 눈을 붙여봤지만, 도통 잠이 오지가 않네


어차피 한시간 뒤쯤에 다시 수유를 해야한다는걸 알아서 더 잠이 안오나봐.


잠도 다 달아났겠다, 널 만났던 소중한 순간이 휘발되어 날라가지 않도록 기억을 끄집어내보려고


출산의 과정은 글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경험이었어


모든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널 곧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고, 무엇보다 네 아빠가 엄마 옆에서 든든히 엄마를 지지해줬거든


30시간의 유도분만, 9시간의 진통 끝에도 너는 세상에 나올 준비가 아직 덜 됐었고, 원인을 모르겠지만 엄마가 침대에 누울때마다 네 심박수가 계속 떨어져서, 엄마 아빠는 너무 무서웠단다


앉거나 일어날때는 심박수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눕기만 하면 네 심박수가 자꾸 떨어지는거야! 어찌나 마음이 초조해지던지


엄마는 네가 무사히 나올수만 있다면 분만 방식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출산은 쉽지 않은 과정이고 각각의 고통이 있으니까.


근데 막상 지나고나니, 무섭고 차가웠던 수술실 경험과 마취 풀릴때의 고통이 너무 힘들었어서 자연분만으로 낳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운 생각이 들긴 해. 엄마는 진통은 겪을만 했거든.


수술실이 얼마나 무서웠냐면, 같이 수술실에 참관한 아빠가 엄마 손을 꼭 잡고 - 괜찮다고, 다 괜찮을거라고 얘기하는 데, 엄마손을 잡고있는 아빠 목소리가 덜덜 떨리더라고.


진통을 함께 겪어낼때도 든든하게 옆에서 지지해주던 네 아빠가 수술실에서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도 두려움이 더 실감나게 다가왔나봐.


그리고 차가운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가위며 칼이며 수술 도구들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양동이에 피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마취제를 썼기때문에 딱히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차가운 분위기나 느낌같은것들은 서늘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게다가 마취가 단단히 돼있어서 살을 가르는 고통조차 느껴지지는 않으면서도, 네가 엄마 자궁에서 끄집어져 나오는 느낌만은 생생했는, 어우 -  느낌만큼은 살면서 다시는 겪고싶진 않네.


9시간동안이나 진통을 겪어낸게 무색하게 수술은 사실 엄청 금방 진행됐는데, 10분정도 걸렸을까..? 네가 자궁에서 쑤욱 꺼내지고 첫 울음을 터뜨렸어.


네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여러가지 감정들이 울컥 올라와서, 네 아빠 손을 꼭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단다. 네 아빠도 너무 고생했다고 훌쩍이면서 엄마 손을 꼭 잡아줬어.


아빠가 널 따라서 가고 엄마는 수술실에 홀로 누워있는데, 몸이 너무 추워서 덜덜덜 떨리더라고. 의사 선생님들이 후처치 하는 긴 시간동안 수술대 위에 누워서 엄마는 한참을 떨었어.


그리고 드디어! 아빠가 널 데리고 수술실로 돌아와서 너와 첫 대면을 하게됐는데, 조막만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가 날 쳐다봤지.


그리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끼루룩(?)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우는데, 엄마는 솔직히… 너와의 첫 대면은 참 낯설었어. 뭔가 좀 얼떨떨 했달지.


응? 이게 내가 낳은 아이라고?


나를 안 닮아서 놀랐나봐. 엄마가 알기로는 유전학적으로 아시아인이 우성이라서, 아빠 유전보단 엄마 유전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나랑은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가, 커다란 눈을 껌뻑껌뻑이며 나를 쳐다보는거야.


엄마는 네가 골룸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단다  

네 눈이 하도 커야 말이지


여전히 병원에서 회복하는 중이라, 네가 내 삶으로 들어왔다는 실감은 아직 나지 않는 것 같아.


너와 그리고 네 아빠와 함께 따듯한 우리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턴 점점 네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게 되겠지?


처음엔 낯설겠지만, 아마 금방 적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초보 엄마아빠라 실수도 많겠지만, 사람은 실수도 하고 실패를 겪어가며 성장하는 거니까. 같이 사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서로 함께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네가 너무 순하고 다정해서, 아직은 힘든지도 잘 모르겠어. 네 아빠가 워낙 너를 잘 돌보고 있어서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걸까? 출산 후 지금 몇일간 네 아빠가 옆에서 너와 엄마를 동시에 돌보느라 매우 고생하는중이야.


네 아빠가 널 바라보고 말걸때마다 눈에서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한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온단다.


어서 너와, 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싶어.

사랑해!


2022.1.17

With lov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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