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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엄마 생각

엄마와 고등어

by 고효경

엄마가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 번도 엄마가 해주시던 고등어조림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엄마가 요리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일부러 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고등어조림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엄마와의 추억, 그 손맛이 그리웠다. 오전부터 부산스럽게 시장에 다녀왔다. 활기찬 시장 거리에서 생선가게를 찾아 걸었다. 가게 앞에는 싱싱한 고등어가 얼음 위에서 은빛을 반짝였다.


"고등어 한 마리 주세요," 내가 말하자 생선가게 아저씨가 물었다. "고등어를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등어조림을 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능숙한 손길로 고등어를 3등분해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봉투 손잡이를 잡자 손에 비린내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비닐봉투를 열어보니 비닐봉지 속 고등어의 은빛 껍질이 부엌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엄마가 싱크대 앞에 서서 고등어를 손질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뼈를 따라 칼이 미끄러지던 소리, 손끝에 묻은 생선의 차가운 촉감, 그리고 부엌에 번지던 소금과 비린내의 조화. 그때의 나는 그 풍경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오늘은 그것을 되살리려는 마음뿐이었다.


싱크대 앞에 서서 고등어를 토막 내는 나의 손길은 서툴렀다. 생선의 물컹거림이 익숙하지 않아 손끝이 주춤했지만, 고등어를 쥔 손에 스며드는 차가운 촉감은 묘하게 익숙했다. 비린내가 손가락 사이로 배어들었다. 그 냄새마저 엄마의 부엌을 데려오는 듯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냄새로라도 기억 속 엄마의 부엌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 무를 꺼냈다. 흙 묻은 무를 손질하며 칼끝으로 껍질을 벗겼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칼 아래에서 울렸다. 무를 얇게 썰 때마다 흰 단면이 드러났다. 둥근 가장자리의 자투리를 하나 베어 물었을 때,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퍼졌다. 아, 이런 맛이었지. 그 기억이 문득 떠오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무를 가지런히 냄비 바닥에 깔면서 엄마가 했던 방식과 같기를 바라며 손끝에 신중을 기울였다.

고추장을 한 국자 떠 물에 풀었다. 붉은 물결이 냄비 안을 가득 채웠다. 매운 향이 부엌에 퍼지며 순간 엄마의 손길이 내 어깨를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설탕을 한 스푼 넣고 간장을 두 바퀴 돌렸다. 소금 한 꼬집, 고춧가루를 툭툭 뿌리며 간을 맞추던 순간, 머릿속으로 엄마의 조용한 손놀림을 떠올렸다.


불을 올리자 조림이 끓기 시작했다.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증기가 창문을 서렸다. 부엌에 가득 찬 김과 매콤한 향, 그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조림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국물이 무에 잘 배어들도록 해야 맛있단다."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나도 천천히 뚜껑을 열고 국물을 떠 무 위에 끼얹었다. 국물에 스며들어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무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내가 잘하고 있는 거 맞을까? 엄마의 맛이 그리워."


조림이 완성되어 나는 작은 접시에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조각을 골라 담았다. 젓가락으로 살점을 떼어내 한입 물었다. 그러나 입 안에 퍼진 것은 내가 기대하던 부드러운 맛이 아니었다. 비릿한 냄새가 혀를 감싸며 목구멍을 쓸고 지나갔다. 입안에 퍼져버린 바다의 날것, 어디선가 갓 끌려와 도망치지도 못한 생선이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멍하니 부엌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 저녁, 차가운 공기가 창문 너머로 스며들었다.

냄비 속 비릿한 냄새와 어설픈 손맛의 흔적들, 그 모든 것이 쌓여 무겁게 내려앉은 부엌과는 달리, 바깥에서 들어온 공기는 차갑지만 정직했고, 더없이 깨끗했다. 고등어를 다듬던 서툰 손길과 비린내가 배어든 공기조차 그 앞에선 숨겨질 수 없는 것만 같았다. 냄비 속 고등어를 바라보다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루 종일 시장을 다니고, 서툴게 칼을 들고, 조심스럽게 간을 맞추던 나 자신이 어쩐지 가엾고 우스웠다. 서툴고 허무한 하루였다. 그러나, 엄마의 그리움을 품은 하루이기도 했다.


두 번째 숟가락을 들며 비릿한 냄새를 애써 외면하며 고등어를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국물이 듬뿍 밴 살점을 흰 밥 위에 올리니, 붉은 양념이 밥알 사이사이에 스며들며 흐트러졌다. 젓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고등어의 부드러운 살결이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따뜻했으면 했지만,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생선의 날내음은 그 희망을 무너뜨렸다. 비린 맛이 혀끝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르는 동안,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밥을 꾹꾹 눌러 씹었다. 그 맛이 불쾌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맛은 단지 고등어조림이 아닌,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그 순간들에 조금이라도 닿고 싶어 애쓰는 나의 고집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밥 한 공기와 함께 고등어조림 한 접시를 비웠다. 엄마의 부재가 남긴 마음의 공허함을 조금이나마 채우고 싶었다. 나는 애써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엄마가 내 곁에 있던 시절의 한 조각이라도 더 기억하며 붙잡고 싶어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어느새 부엌에 가득했던 비릿한 냄새도 이제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고등어조림의 단순한 실패의 냄새가 아니라, 엄마와 나 사이에 남아 있는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퍼지는 비릿한 맛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하면 돼, 너무 잘하려 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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