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2월은 계절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달이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봄의 따스한 햇살이 그 틈새로 조금씩 스며든다. 이 중간 지점에서, 나는 마치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시간을 보낸다. 눈은 내리지 않고, 꽃도 피지 않는다. 하루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런 모호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땅은 얼지도, 녹지도 않고, 그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는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마치 어디로 향할지 몰라 방황하는 듯하다. 이 어중간한 시간이 나를 집어삼킨다.
나는 이불속에 몸을 숨기고, 시린 바람에 발가락이 차갑다. 겨울의 마지막 숨결일지, 아니면 봄의 첫 속삭임일지 알 수 없는 바람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온다. 새벽녘에 잠시 눈을 떠 오늘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몸뚱이는 한낮에도 컴컴한 방 안 침대 속으로 다시 몸을 웅크려 들게 만든다.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지만, 몸과 마음은 너무 무겁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점점 더 불안해지지만, 나도 모르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나날들이 점점 익숙해진다. 몸은 마치 납덩이처럼 무겁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에 사로잡혀 눕는다.
2월은 나에게도, 그리고 많은 뮤지션들에게도 고요한 달이다. 공연은 없고, 앨범 발매도 없는 시기다. 그만큼 무대 위에서의 활기가 사라지고, 기타는 먼지가 쌓여 방 한 구석에서 나를 기다린다. 겨울철 건조한 방 안에 방치된 내 기타는 점차 건조해졌고, 급기야 기타 줄이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기타 수리점에 가서, 겨울 동안 고장 난 기타의 건조함을 해소하고, 그날부터 간신히 다시 기타를 손에 들게 된다. 손끝으로 기타 줄을 퉁겨 보려다가도, 또다시 그만둔다. 가사 작업을 시작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다가도, 다시 덮는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음악의 조각들은 손끝에서 실현되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나는 매일 방 한 구석에 놓인 악기를 바라만 본다. 음악은 결국 순간을 붙잡는 일이지만, 요즘 나는 그 순간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녹음되지 않은 무음, 저장되지 않은 멜로디들이 나를 부르며 손짓하지만, 나는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조용한 갈망이 내 안에 깊숙이 묻혀 있다. 그 갈망은 점점 더 깊어지지만, 여전히 손끝에 닿지 않는다.
2월은 내게 있어서 시험의 달이다. 무기력 속에서도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갈증이 있지만, 그 갈증조차 점점 흐려지는 느낌이다. '지금이라도 해야 해'라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매일 반복될 뿐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비트는 막연하고, 가사는 첫 구절에서 멈춰버린다. 창작의 과정은 항상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헤매는 것 같지만, 2월은 유난히 끝없는 방황처럼 느껴진다. 그런 불확실함 속에서 나는 내 음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작은 순간들이 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의 떨림, 지나간 계절에 대한 짧은 기억들. 그런 소리들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나는 다시 기타를 손에 쥔다. 거창한 멜로디가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은 그저 내 손끝에서 울리는 작은 음들이 내 마음을 채워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2월은 그런 달이다. 무엇을 시작하기엔 막막하고, 멈추기엔 불안한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작은 영감들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들리지 않고, 아직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 뿌리들은 분명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내일은 다시 기타를 열어볼지도 모르고, 아니면 여전히 멈춰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월은 그런 달이다. 무엇이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고요하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시간. 나는 그 속에서 내 음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