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가
누군가의 부재와 싸우듯이 나를 숨기러 간 제주에서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의 품처럼 안전했다.
파도가 잔잔하던 어느 날, 마음에도 햇살이 스며들던 날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별이라는 이름을 갖은 암환우의 아버지였다.
서울대학병원 암병동에 입원해 있는 딸을 위해, 병실로 와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냐는 부탁의 전화였다.
낯선 목소리였지만 그의 떨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엄마의 숨소리가 겹쳐 들렸다.
수년간 엄마를 병실에서 마주했던 날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의 손을 놓았던 그 병실.
그 기억이 전화기 너머로 거세게 밀려왔다.
나는 그렇게, 한별이라는 낯설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이 곁에서 마음이 멈춰 섰다.
그날 이후, 한별이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가 죽음을 며칠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도, 나는 결국 병실로 가지 못했다.
내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에게 무슨 노래를 불러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그런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 자책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며칠을 보내고 조심스레 그 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별이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한별이가 내가 전화를 건 바로 전날 밤, 이름처럼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모든 말이 막혔다. 늦은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침묵만이 흘렀다.
계절은 흘렀고 잊으려 애썼던 기억도 가끔씩 마음에 스며들곤 했다.
그렇게 또 다른 봄의 문턱에 다다랐을 즈음, 또 다른 '한별'이라는 이름이 나를 찾아왔다.
몇 년 동안 후원하고 있는 장애아동을 돕는 단체인 장아람재단이라는 곳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25개월 된, 작고 여린 한별이란 이름을 갖은 아이였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작은 생명이 이미 열한 번의 수술을 견뎌냈다고 했다.
한별이는 기관지 단답문합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수술비만 최소 400만 원이 필요하다 했다.
그 수술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여섯 번이 넘는 수술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하던 목소리 사이로, 나는 다시 첫 번째 한별이를 떠올렸다. 그 아이가 남긴 희미했던 인사, 내 노래를 듣고 싶다고 말했던 그 마지막 바람의 목소리가 이번엔 두 번째 한별이를 위해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펜을 들고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한별이에게 하지 못한 말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멜로디가 마음속에서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프지 마라, 아가.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별. 엄마의 소원, 우리의 소원.
나는 그 노래에 ‘사랑해, 아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별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나는 머물던 제주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마치 멈춰 있던 시간 속에서 한별이가 손을 내밀어준 듯했다. 서울은 낯설면서도 아릿했다. 익숙한 거리임에도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고, 그 틈에서 나 자신도 어딘가 조금은 바뀌어 있었다.
한별이를 위한 공연이 열렸다. 무대 위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듯 노래를 건넸다. 참여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모금으로 이어졌고, 결국 수술비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한별이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몇 년이 흘렀을까. 어느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관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그때, 무대 아래에서 작고 느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내 앞에 다가오더니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목에는 기관절개관이 붙어 있었고, 그것은 아이의 호흡을 도와주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이는 내 귀에 대고 '사랑해, 아가'를 불러주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선명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아, 한별이구나..."
그 이름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순간, 나는 아이를 껴안으며 눈을 감았다. 포근한 아이의 품속에서 지나간 시간이 스쳐갔다. 살아서 다시 내 앞에 선, 작고 단단한 기적 같은 생명이었다. 첫 번째 별의 침묵이, 두 번째 별의 호흡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첫 번째 한별이에게 보내는 나의 늦은 대답을 전할 수 있었다. 떠난 자가 남은 자를 일으켜 세우고, 꺼져가던 숨결 속에서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한별이라는 두 아이가 내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는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살아 있는 위로가 되었다.
그 봄, 누군가는 별이 되었고 누군가는 별처럼 살아냈다. 오월의 초록은 해마다 다시 오지만, 그 품에 안긴 기억은 오래된 온기처럼 가슴 한켠을 흔들고 지나간다. 어린이날이면, 나는 하늘의 별이 된 아이와 땅에서 별처럼 살아낸 아이를 떠올린다. 마음으로 수없이 되뇌인 그 이름이 오월 봄바람에 실려 아직도 내 안에 살아있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아가, 어디서든 아프지 않기를. 찬란했던 너의 순간들이 잊히지 않기를. 너의 숨결이 이 계절의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창가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사랑해, 아가.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