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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온기, 5월

생일의 노래

by 고효경

어느 날, 오른쪽 손목 위에 작은 것이 돋아 있었다. 말간 물방울처럼. 그것은 통증을 품고 있었고,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저릿한 기운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병원을 찾았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내 숨결이 닿는 폐 깊숙한 곳, 규칙 없이 튀는 맥박, 그리고 아픈 곳의 가장 민감한 감각들을 맡겨야 했다. 그는 내게 청진기를 대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를 스쳤고, 숨이 순간 목에 걸렸다.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가슴과 등에 반복적으로 청진기를 옮기는 손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의사는 이마를 찌푸리며 무언가를 들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고, 그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들 앞에 나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

곧이어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게 주사기를 들었지만, 내 혈관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쪽 팔에서 시도한 채혈은 혈관이 가늘어 실패로 끝났고, 반대편 팔로 옮겨 또다시 시도했다.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나왔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간호사는 이마에 땀을 닦았고, 결국 손등까지 바늘이 옮겨졌다. 팔 곳곳에 남겨진 점점이 붉은 자국들 사이로 멍이 번져갔다. 피는 여러 번 빠져나갔고, 팔 안쪽은 검게 멍들었다. 병명이라도 알고 싶어 병원을 전전했다.

평촌의 한 병원에서 의사는 내게 말했다.

"혈관 조형술을 해보겠습니다. 검사 후 8시간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나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떤 말도 제대로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대 위에서 나는 옷을 벗고 하얀 천 아래에 누워 있었다. 하얀 가운의 사람들이 조용히 움직였고, 나는 그들 언어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얀 천 아래 누워 있는 순간, 나는 문득 스물한 살의 나를 떠올렸다. 오진으로 배를 가르는 수술을 받았던 그날.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조명, 가만히 누워 있던 수술대의 감각이 이 병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쉽게 의사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진단이 불확실하게 느껴졌고,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몸이 고장 나는 것보다, 아무도 내 상태를 명확히 말해주지 못하는 그 무력함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검사를 시작하려던 그 찰나에, 나는 배드에서 일어났다. 하얀 천으로 덮여 있던 홑이불 같은 덮개가 내 몸에서 미끄러지듯 흘러내렸고, 알몸인 채로 나는 그대로 의사의 눈높이에 얼굴을 맞댔다. 의료진의 놀란 눈빛이 내 몸에 쏟아져 닿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방송이 있습니다."


그 말은 검사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수없이 망설였던 말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무대에 섰다. 퍼렇게 멍든 팔을 조심스레 움직이며 조명이 나를 덮는 자리에 섰다. 무대 뒤의 어둠에서 걸어 나올 때, 관객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숨이 가빠졌고, 다리는 떨렸으며, 마이크를 잡은 손끝엔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목울대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조명은 생을 비추는 빛 같았고, 그 아래에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듯한 심정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 노래는 나의 울음이었고, 혹시 이 노래가, 내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몇 달 동안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소개로, 한남동에 있는 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을 찾았다. 또 다른 의사는 내게 말했다. "무슨 이런 많은 검사를 했어요? 원인은 혈관인데 동맥인지 정맥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3개월 지켜봅시다.

3개월 후에도 계속해서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혈관을 자르고 붙이는 수술을 해야는데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장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그 3개월을 조용히 살아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오늘은 괜찮을까— 나 자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시간은 기다림이라기보다 내 삶을 쓰다듬는 시간이었다. 삶의 속도를 낮추는 연습.


3개월 후, 믿기 어려운 변화가 내 몸에 일어났다. 손목 위에 돋아났던 물혹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비되었던 신경은 조심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움츠러들던 오른팔이 조금씩 부드럽게 펴졌다. 손끝에 감돌던 저릿한 기운도 어느새 흐려졌고, 밤마다 조심스럽게 눕던 자세는 어느 날부터인가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깊은숨을 들이쉴 때마다 답답하던 가슴도 이전보다 한결 덜 조여왔다. 진료실에서 다시 만난 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표정에 놀라움이 어렸다. 여전히 오른팔은 완벽하지 않았다. 약간의 뻣뻣함이 남아 있었지만, 일상에 큰 불편은 없었다. 살아가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말 뒤로, 나는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햇살이 따뜻하게 등을 감싸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불현듯 떠올렸다. 병실에 홀로 누워, 죽음과 삶 사이에서 가늘게 떨고 있던 나를.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몸을 움켜쥐고 있던 그 시간들이 스쳐지났다.


그날 이후, 나는 매년 생일이면 무대에 선다. 빛 아래, 가장 어두웠던 나를 꺼내어 노래한다. 그 시간은, 내가 내게 주는 선물이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생의 파편이다. 그리고 나는 매년 '생일 자선 콘서트'를 연다. 내 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 숨을 이어주는 조용한 다리가 된다. 누구보다 약했던 내가, 가장 낮은 곳에서 노래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덤으로 얻은 삶을 나누는 자리다. 내 생일이 누군가의 생을 안아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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