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이 눅눅해지는 6월

그 죄책감조차도 덜했을 텐데

by 고효경

나는 나이 들어간다는 게 한동안 남의 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늙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어릴 줄 알았다. 나잇살이라는 살도 나를 피해 갈 것 같았고 감정은 늘 단단할 것만 같았다. 불혹을 넘긴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문득 낯선 얼굴과 마주쳤다. 익숙한데 낯선 느낌이라 자세히 보려고 눈에 힘을 줬더니, 이마 한가운데에 내천자 모양의 주름이 짙게 그려졌다. 나는 아직도 십대 소녀 같아서 충동은 불쑥 솟구치고, 불의 앞에서는 마음이 요동친다.

반면에 일상을 마주치며 지나왔던 날들은, 물속을 걷는 것처럼 흐릿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워도 손에 쥘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삶은 숨이 찼었다. 남들 하는 만큼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애써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고, 그러는 사이 나는 나를 놓쳤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날들이 이어졌다. 소중한 것들이 손을 떠나갈 때,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고 이기려는 싸움을 사는 세상에서, 나 한 사람이라도 이기려 하기보다는, 조금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손해 보며 손에서, 마음에서 놓았던 것들을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내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것들을 그 당시엔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슬픔에 잠겨 고마움을 흘려보냈고, 욕심이 앞서 감사함을 놓치기도 했다. 나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시간들. 그래서 나를 자주 채근했고, 쉬는 법을 몰랐다. 칭찬에는 인색했고,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나를 조각냈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보호는 없었고, 돌봄보다는 방목이었다. 존재보다는 역할이 먼저였고, 그 안에서 나는 자주 외로웠다.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고 싶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아빠에게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품는다. 내가 조금 더 나은 딸이 된다면, 이제라도 어릴 적에 받지 못한 사랑을 다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 기대는 나에게 너무 큰 짐이었고,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데, 나는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무언가를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내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순간, 더 큰 것을 갈망하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타인의 사랑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아닐까?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 어쩌면 덜 조급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죄책감조차도 덜했을지 모른다.

삶은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 배움을 안겨준다. 어쩌면 내가 이 길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일지 모른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 내 환경을 탓하지 않고, 내 모습을 부정하지 않으며,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래서 인생은 아직도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 길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나로 완성되어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래된 온기,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