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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꺼내는 7월

감정을 말로 옮기는 연습

by 고효경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기사가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첫인상은 단정했다. 옅은 푸른 작업복 위에는 그의 이름이 적힌 작은 배지가 왼쪽 가슴에 달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터넷 점검하러 왔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인사를 건넸다. 말투에는 급함이 묻어 있었지만, 태도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손에는 공구 가방을 들고 있었고,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마치 우리 집에 인터넷을 여러 번 고쳐본 것처럼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작업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가 떠난 후 인터넷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있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공구 가방을 놓고 왔으니, 지금 집으로 가도 될까요?"

오전에 우리 집 인터넷을 수리했던 기술자의 문자였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작업하면서 혼자 사는 여자의 집이라는 걸 분명히 알았을 텐데, 이 시간에 집에 오겠다고? 뭔가 좀 상식적이지 않다 싶었다.

"지금 집에 없으니, 내일 아침에 오세요."

나는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바로 그의 답문이 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세요. 공구 가방을 찾아갈게요."

이 사람, 제정신인가?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무서움이 동반된 짜증이 치밀었다. 순간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혼자 사는 여성을 겨냥한 범죄 영상이 떠올랐다.

우선 그 공구 가방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방 안 벽 쪽 커튼에 가려 있는 공구 가방을 찾아 현관 밖에 내놓았다. 알아서 가져가겠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며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가 공구 가방이 없어 그가 내일 일을 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

정말 나는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 거지?'

휴대전화를 끄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상황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가 집에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불안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경계 신호가 울렸다. 혹시라도 이 밤에 기사가 올까 봐, 언제든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불안한 마음은 밤새 나를 깨웠다. 다음 날, 현관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그 기술자 아닐까?' 몸이 굳었다. '아니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해? 무례한 건 그쪽인데, 왜 두려움은 나의 몫이어야 해?' 그러는 사이 발소리는 이내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어보니, 현관문 앞에 두었던 공구 가방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가 가져갔겠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후 현관문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몸이 움찔 반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민감함도 서서히 무뎌져 갔다. 그렇게 그 일은 일상에 묻혀갔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또다시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가라앉았던 물밑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고객센터에 서비스를 요청하긴 해야 하는데. 혹시 같은 기사가 오면 어떡하지?

며칠을 고객센터 번호를 눌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인터넷 없이 하루를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불안을 품은 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남자였다. 기술자가 가정을 방문해 직접 점검해 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1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는 걸까?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말이 돌아올까 봐 몇 번이나 말문이 막혔다. 나의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1년 전 서비스 방문을 받았던 그날을 말했다. 서비스 기사가 밤늦게 공구 가방을 두고 갔다며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를 받았고, 그 일로 며칠간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상담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침묵 사이에 후회가 밀려왔다.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었다.

그때 상담원이 말했다.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 기사에게는 반드시 컴플레인을 남기겠습니다."

과하게 민감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은 단숨에 무너졌다. 예기치 못한 상담원의 공감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상담원은 거듭 대신해 사과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 봤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도 불편한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두려움이 몸에 새겨졌는지, 이제는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이성이 판단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경계부터 하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표현하는 일은, 또 다른 위협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차라리 참고 넘어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그런 선택들이 쌓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리되지 않았던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 넘어갔던 일이 괜찮지 않은 일로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상담원의 말은 회사의 지침대로 정해진 응답과 사과였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의 무언가를 깨웠다. 그 후로도 인터넷 문제로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공구 가방을 든 기술자의 방문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말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위축되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 때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지는 않게 되었다.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감정을 말하지 않았을 때 내 안에서 느껴졌던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훨씬 오래도록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감정의 모양을 꺼내어 입술 앞에 올려놓는 것이 아직은 목구멍에서 머뭇거리는 상황이지만,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를 내가 알아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 은 나에게 있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가슴 한편에서 불편함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예전이라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제는 그 감정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묻게 된다. '내 안에 이 감정의 모양은 무엇이지?

답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때로는 화인지, 불안인지, 두려움인지 분간이 서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 안에 오랫동안 묶어두고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화해해 나가고 있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 그 모든 감정들이 나의 일부였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내가 나에게서 알아챈 내 감정을 말로 옮기는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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