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에서 길을 잃다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 후끈한 습기가 온몸을 덮쳤다.
땅에서는 어제의 햇빛이 식지 않은 채 열기를 품고 있었고, 주변의 나무조차 습기에 젖어 반들거렸다.
내가 캄보디아에 온 이유는 여름휴가 동안 이곳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숙소는 씨엠립 외곽의 한 초등학교였다. 교실을 개조한 방에는 간이침대와 모기장이 전부였다. 모기장 위로는 황소개구리와
도마뱀이 기어오르며 이 공간을 자연과 공유하듯 움직였다. 도마뱀은 천장을 따라 소리 없이 이동하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몸을 침대에 기대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습한 공기 속에서도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햇살보다 먼저 깨어나는 아이들의 발소리에 눈을 떴다. 후끈한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습기에 젖은 식물들 사이를 걸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거리였지만 마음은 흔들렸다.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오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의 작은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환한 눈빛 속에서, 매일 음악 이상의 것을 배웠다. 가진 것이 없어도 웃을 줄 아는 마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순수함을. 낡은 피아노 건반 하나에도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캄보디아에서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현지 선생님들은 앙코르와트 여행을 제안했다. 함께 유적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었지만, 나는 혼자 걸음을 옮겨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였다는 나무 앞에 멈춰 섰다.
천 년의 시간이 숨을 죽인 채, 커다란 뿌리가 사원을 감싸고 있었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30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과거의 사람들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함께 걷던 팀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후 5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앙코르와트의 광대한 유적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엔 가로등 하나 없었다. 거대한 석조 건물들 사이로 어둠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음속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석조 건물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때, 나는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혹시 이대로 밤을 새워야 하는 건 아닐까? 그때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고, 한 대의 고속버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버스 안에는 여러 명의 외국인들이 앉아 있었고, 몇 명이 더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버스에 오르려던 한 남성의 소매를 달려가 붙잡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양 여성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Excuse me, could you please help me?" 나는 서툰 영어로 말했다.
버스 계단을 오르던 남성은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았고, 버스 안의 사람들도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 떨리는 목소리와 절망적인 표정이 그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는지, 그의 얼굴에 연민의 빛이 스쳤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이 밤에 앙코르와트에 혼자 남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음이 뒤엉킨 낯선 도로에서 버스는 같은 길을 돌고 또 돌며 길을 찾았다. 1시간 가까이 헤맨 후, 누군가가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내게 다가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다시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잃고 낯선 사람들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씨엠립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레스토랑이었다.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축 양식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에는 조각상과 작은 분수가 놓여 있었다. 캄보디아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은은한 조명 아래 크메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셔츠에 원피스, 구두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의 구겨진 반바지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는 캄보디아 요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깊은 갈색 도자기 접시에는 바삭하게 튀긴 생선이 담겨 있었는데, 표면은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초록색 실파와 빨간 고추가 송송 다져져 뿌려져 있었다. 옆에는 넓은 하얀 접시에 담긴 고기 볶음이 있었는데, 윤기 나게 볶아진 고기 사이로 연두색 양파와 당근, 그리고 보라색 가지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깊은 사발에 담긴 국수였다. 맑고 진한 노르스름한 육수 위로 하얀 쌀국수가 부드럽게 떠있었고, 그 위에는 진한 초록색 고수잎이 푸릇하게 가득 올려져 있었다. 육수에서는 은은한 계피 향이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지쳐서 멍하니 테이블 위의 음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를 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행 중 몇몇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았다. 그들은 접시를 놓으며 말했다. "좀 먹어." 나는 감사하다 말하며 뱃속의 소리를 잠재울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수저를 들어, 낯선 음식을 한 입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향신료의 복합적인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게 "음..." 하는 소리가 나왔다.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은 캐나다에서 온 봉사팀이었고 여름 단기로 캄보디아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내가 소매를 붙잡고 도와달라고 했던 그 남성의 이름은 피터였다. 피터는 내게 이름을 물었고 내가 왜 캄보디아에 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캄보디아의 빈곤층 지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러 왔다고 말했다. 일정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현지 선생님들이 앙코르와트를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앙코르와트에 왔다가 동행자들을 놓쳤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서 "You are an angel."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녀는 대가 없이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러 온 마음이 천사처럼 보였나 보다.
"어떤 단체에서 오셨어요?" 피터가 물었다. 나는 한국의 한 기독교 단체에서 왔다고 말하며 단체 이름을 말했다. "우리도 그 연합 네트워크 소속이에요!"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말했다. "저희는 캐나다 지부에서 온 거예요!"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온 동료들이라는 걸 알게 되니 갑자기 분위기가 친밀해졌다. 마치 오랜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질 때쯤 피터가 말했다.
"한국팀에서 당신을 찾고 있겠군요, 한국팀에 연락해서 당신과 함께 있다고 알려야겠어요."
그때 건너편 한 여성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네트워크 연락망이 있어요. 제가 연락해 드릴게요."
그렇게 몇 분 후, 한국팀 센터와 연결되었다. 밤 10시가 넘어, 나를 백방으로 찾고 있던 한국팀 대표가 레스토랑에 나타났다. 대표의 얼굴에는 "살아있구나"라는 안도감과 "다행이다"라는 확신이 동시에 스쳤다.
나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여성을 납치해 베트남이나 라오스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있었다. 내가 사라진 상황에서 한국팀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며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무려 5시간 동안 한국팀은 나를 찾기 위해 캄보디아 경찰까지 동원해 앙코르와트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경찰차를 타고 앙코르와트 입구를 지켰으며, 혹시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현지 선생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했다.
대표는 팀원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으니 빨리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캐나다 봉사팀 역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느껴졌다. 대표와 함께 일어선 나를 보며, 캐나다 봉사팀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덕분에 우리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네요." 한 여성이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꼭 연락하세요. 캐나다에도 놀러 오시고요"라고 말하며 피터는 내 손에 연락처와 주소가 적힌 쪽지를 쥐어줬다.
"여러분 덕분에 최악의 상황이 최고의 추억이 되었어요." 나는 말했고 우리는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대표의 바이크 뒤에 올라타며 나는 레스토랑을 돌아보았다. 불빛 아래 손을 흔들어주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앙코르와트에 쏟아지는 햇살, 메콩강 유역의 이 땅은 여름이면 온 세상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도로 위로 툭툭이 배기가스가 뒤섞이고, 현란한 조명이 춤추는 밤 시장 골목에서는 코코넛 향신료가 코끝을 간질거렸다. 바이욘 사원의 216개 얼굴상들이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이 땅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낯선 이방인에게 주저 없이 미소를 건넸다. 그 뜨거웠던 7월, 나는 길을 잃었고 캄보디아 땅에 사랑의 빚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