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넷 ep.09
한동안은 샴푸 하기가 무서웠다.
출산 후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손만 대도 머리가 우수수 빠졌다. 아이들 본다는 핑계로 샤워를 하루이틀 건너뛰고서 하면 더 많이 빠졌다. 와- 정말 가발 써야 하는 거 아닐까? 머리를 어떻게 말려도 훤하게 비어 보였다. 머리숱으로 걱정 한 번 없던 나도 이렇다니.
머리를 감으면서 빠지고 수건으로 털어도 빠지고 드라이로 말리면 또 빠진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들 밥먹이면서도 빠지고 아이들을 트림을 시키면서 어깨에 올려두면 빠져서 아이들 목에 머리카락이 끼어있다. 걷기만 해도 내 머리카락은 빠져서 곳곳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집에서도 친정에서도 나는 매일 돌돌이를 들고 다녔다.
곧 잔디인형 같이 다시 나겠지?
첫 조카는 여자아가로 사랑스럽고 큰 눈이 매력적인 귀염둥이다. 언니가 항상 머리에 뭔갈 씌워서 외출을 했다. 모자든 보넷이든. 큰 눈덕에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숱 때문에 여자아가로 안보일까 싶어 그랬다고 했다. 형부의 가늘고 힘없는 모발을 꼭 닮은 조카는 어느덧 7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머리숱이 적다.
남편과 나는 모두 머리숱이 많아 머리숱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가들은 머리가 새카맣게 나오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했지만.
아가들이 태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 다 걱정 없이 숱이 많았다. 다만 첫째 아가가 조금 적었다. 딸이여 좀 더 숱이 많았으면 했지만 사랑스러운 큐피 애교머리를 가지고 태어나 만족스러웠다. 둘째도 빼곡하게 나있었다. 다행이다. 남편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제일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정말인지 아가들은 신기하다. 엄마인 나와 남편을 반반씩 섞어 나왔는데, 머리 나는 방향까지 가마까지 똑 닮아 나왔다. 남편의 입매를 쏙 뺀 첫째는 남편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으로 가마가 있었고 내 미니미라고 해도 손색없는 둘째는 쏟아지는 앞머리를 가진 내 머리와 똑같이 태어났다.
아가들은 쑥쑥 자라서 어느덧 태어난 몸무게보다 4배는 커졌다. 그 사이에 머리도 쑥쑥 자랐다. 다만 고개를 가누기 시작한 요즘 뒤통수가 대머리 독수리같이 숭숭 빠진다. 첫째도 둘째도 뒷머리를 보면 영락없이 대머리 독수리가 따로 없었다. 더군다나 배냇머리가 빠지기 시작하자 아이들을 안거나 같이 조금 놀다 보면 내가 아이들 머리카락 때문에 목이 칼칼했다. 입안에서 자주 아이들 머리칼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목욕시간이었다. 둘째가 첫째보다 긴 머리를 자랑했는데, 둘째를 먼저 씻긴 날에는 아무리 욕조 청소를 해도 둘째 머리카락이 동동 떠다니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 뒤에 첫째를 씻기기는 아무래도 찝찝했다. 엄마에게 얘기를 하자 밀어주자 하셨다. 그 말에 솔깃해진 나는 밀어주면 조금 더 균일하고 예쁘게 나지 않을까 싶어 쿠팡에서 바로 신생아용 바리깡을 주문했다. 두 번씩만 밀어도 본전은 뽑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지만 혼자는 무서워서 친정엄마와 함께 하기로 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다녀온 어느 날, 엄마와 눈빛을 교환하고 첫째를 잡아 식탁의자에 앉았다. 우르르 까궁을 하며 비닐 커버를 입히고 바리깡을 들었다. 얌전히 있던 첫째는 울기 시작했다. 아빠까지 합세해서 어른 셋이 아가 하나를 잡고 머리를 밀었다.
둘째는 좀 더 수월했다. 전혀 울지 않았으니깐. 재미나게 영상도 찍으면서 배냇머리와 작별인사를 했다.
두 아가들 모두 빠박이가 되어 해병대스러워졌지만 땡글땡글하니 너무 귀엽다. 많이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밀어놓고 보니 똑같이 생겼다.
꼭 나를 닮았다.
너희들 둘 다 머리빨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