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민 Nov 08. 2024

웃는 여자(1)

친절하기 참 힘들다

호감을 사기란 쉽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생긋 지어보는 미소는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기에 충분하다. 따라오는 오해 역시 나의 몫이지만..


   나는 잘 웃는다. 첫인상이 차갑다는 이야기 때문에 들인 습관이다. 그다지 다정하지도, 붙임성이 좋지도 못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위해 잘 웃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나에게 웃음은 일종의 생존 도구이자 그들의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친절하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모두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들 삶이 팍팍할 테니 나로 인해 불편해지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었다. 강박까진 아니었지만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이 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친절을 다정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호의를 호감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바로 내 왼손 약지의 반지가 사라진 이후로부터였다. 나는 이 현상이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꽤나 불쾌했다.


   하루는 반지가 없어져 허전해진 왼손을 바라보며 바닷가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미소를 띠며 말을 걸었고 더 나아가서는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전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금세 생겼던 나는 오직 그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 말을 거는 대부분의 사람과 데이트를 해보았고,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웃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웃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들 역시 나에게 쉽게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이 진심인지 거짓인지는 상관없었다. 오직 웃음에 가려진 의도만이 중요하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 셈이다. 놀랍게도 관계에서 웃음을 걷어내니 상대가 의도한 바와 함께 의심 가득한 내 모습이 보였다. 순간 굉장히 불쾌했다. 상대만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는 완전무결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웃음을 습관화하였나. 외로워서였을까. 누군가를 사귀고 싶어 시작한 습관이었지만, 친해진 이후엔 오히려 친한 사람들에게 무표정을 많이 보여주게 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감정을 숨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기복이 크지도, 표현을 크게 하지도 않는 편이었기에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웃음을 선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돌고 돌아 나의 웃음은 친절로, 친절은 웃음으로 맞물렸다.

작가의 이전글 보통의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