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당분간 러시아
초보 엄마한테 가장 힘이 되는 말이 있다
'우리 애도 그랬어'
그말 한마디면 우리 애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며, 엄마인 나 역시 뭔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니라고 안심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곧 생후 3개월이지만 여전히 하루 두어번은 게워 올리는 아기 때문에 항상 고민이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주책스럽게 아기 토하는 얘기를 꺼내놓게 된다.
러시아어 과외 시간에도 예외 없었다.
서툰 러시아어로 '내 아기. 자주 토해요. 나 스트레스 많아요. 아기가 37주에 태어났어요.'
물어보지도 않은 아기 이야기를 더듬더듬 꺼냈는데 항상 내 러시아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선생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주고는 말했다
'우리 애도 그랬어, 우리 아기도 37주에 태어났거든. 한달만 참아봐, 괜찮아져. 정말'
내가 아는 러시아어 단어로 구성된 간결하지만 따뜻한 말이었다.
이제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선생님의 딸도 아기 때 우리 아가 만큼이나 자주, 많이씩 토했는데 4개월 이후에는 토하는 횟수가 확 줄었고, 지금은 반에서 키가 뒤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했다.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공감의 언사.
이걸 하기도 듣기도 참 쉽지가 않다.
가족 사이에서 더 그렇다.
러시아에서 살게 된 후 남편과 참 많이 싸우는데, 싸움의 시발은 항상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고 무정하게 내뱉는 말 한마디다.
예를 들면 이런거.
원래는 아기 목욕을 내니에게 시키다가 아기와 목욕하는 시간동안 눈도 마주치고 스킨십도 하고 교감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얼마전부터 내가 아기 목욕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게다가 아기가 이제 꽤 무거워져서 목욕을 시키고 나면 허리 무릎 삭신이 쑤신다.
며칠 전 일이다.
"아이고 삭신이야" 아기를 욕조에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옆에서 목욕을 도와주던 남편이 "그러게 목욕은 내니를 시키라니까. 이해가 안되네" 라고 하는 거다.
이해가 안된다니...
나에게는 "허리가 아파서 어떻게 하지? 내가 좀 주물러줄까?" 라는 말,
이게 결혼 8년차 부부에게 너무 낯간지럽다면 말없이 아기를 데리고 가 안아주는 공감의 언사가 필요했다.
내 육아 방식에 대한 평가와 비판 말고 말이다.
아기가 잘 때까지 화를 꾹 참다가 아기를 재우고 남편과 결국은 말다툼을 했다.
너의 말이 서운했다는 나의 볼멘소리에 남편은 또 공감하지 못했다.
부부싸움 중에 상대에게 공감해주는 것은 내쪽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거고, 그건 곧 패배니까.
(부부 사이에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우리 부부는 싸울 때마다 이기고 지고에 목숨을 건다. 유치의 극치... )
나 또한 그러하다는 말
상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 간단한 언사가 우린 뭐가 그렇게 힘이 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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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로 '나도 그래'는 '야 도제'(я тоже). 엄청 간단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에 반대를 하려면 '야 니 싸글라슨(я не согласен)' 으로 갑자기 복잡해진다.
괜히 서로에게 맞서지 말고 서로 공감하고 동의해주라는 러시아어 창시자의 깊은 뜻일지도 모르겠다.
어언 8년째 서로에게 공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부부.
러시아에 있는 동안에는 '야 도제'라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나부터 좀 더 노력해야겠다.
너그러운 내가, 좀 더 노력해주어야겠다.
[덧붙임]
러시아의 새해.
2022년 10분전, 러시아 TV에서는 어떻게 새해 카운트다운을 할까 싶어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이럴수가...
푸틴이 나왔다
붉은광장 CG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궁민 여러분' 새해 담화를 하는 것
마치 5공화국의 한 때를 보는듯했지만, 그래도 헌해 가고 새해 오는 느낌이 확실히 나긴 했다.
(그나저나... 푸틴은 한때 근육질을 자랑했던 것 같은데, 살이 좀 찌셨나보다. 코트 단추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