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포기했던 작가 지망생이 글을 쓰게 된 까닭
내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시점은 모두 일치한다. 결혼을 약속할 만큼 늦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헤어질까를 고민한 시점, 우리 가족이 이런 상황인데 아이를 갖겠다고 난임 병원을 다니는게 맞는가를 고민한 시점, 나름 화목했던 우리 가족이 분노와 차가운 무관심으로 단절된 시점, 오랫동안 문제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다닐까를 고민한 시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살아야 될까를 고민한 시점 말이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훌륭하신 요양보호사님들의 도움으로 주간보호센터에 힘겹게 적응해 주셨고, 우리 가족은 조금씩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모두의 노력으로 부모님께서 예전과 비슷하게 일상생활을 누리게 되고, 우리 가족이 다시 상처를 보듬고 화합했다고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여전히 부모님의 치매는 진행중이고, 우리 가족은 분열된 채, 각자 부모님 댁을 방문하여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돌아온다. 아무리 치워도 계속 쓰레기는 넘쳐나고, 아무리 청소와 세탁을 해도 집안에 악취가 가시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와야지, 더 하고 나왔다가는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질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이 모든 벽에 갇혔다고 느꼈을 때 꽉 막힌 벽을 향해 무언가 나만의 제스처로 표시하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나 남편에게 우리 집안 문제에 대해서 넋두리를 하는 것도 한 두 번이고, 서로 마음에도 없는 거친 말을 주고받던 가족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지 시간이 흘렀으니까. 나의 문제와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넋두리를 하며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 주변에는 없지만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지푸스의 신화 속 바위를 밀어내는 형벌처럼 느껴졌던 우리 가족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과 글쓰기가 과연 무슨 힘이 있을까라고 의심되는 시대에, 도파민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영상의 시대에 오히려 글을 통해 치유 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 글을 쓰는 재능도 의심스럽고 글쓰기가 고통스러워서 머나먼 길을 돌아갔던 작가 지망생이 이제는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 치매로 무너져가고, 부모님이 무너져갈수록 사랑했던 가족 관계는 더 빠르게 무너져가는 모두의 치매 가족 이야기를 써 보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과 가족을 보면서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가족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구나, 인생의 생로병사를 겪다보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반짝이듯이 그렇게 다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들만이 아는, 우리들만의 목소리로 서로의 고단한 삶을 함께 다독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때는 여러가지 이유로 글쓰기를 포기했던 작가 지망생은 글쓰기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목소리로 모두의 치매 가족을 그려내는 현재 작가가 되어 보는 것이다. 현재 작가의 치매 가족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벽에서 갇혔다고 느낀 스스로가 출구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하는, 힘겨운 첫 걸음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힘겨운 삶에도 반짝이는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