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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치매 가족이 되다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글을 쓴다

by 현재 작가

뉴스나 영화에 나오는 치매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가족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하시던 엄마, 항상 공부하시고 책을 가까이하시던 아빠였기에 우리집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쌓인 평생의 분노를 수시로 터뜨리는 엄마를 보면서, 식사도 거르신 채 무기력하게 텔레비전만 보시던 아빠를 보면서 예상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집은 언제부터 치매 가족이 되었을까.


코로나 시절, 엄마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집에서만 지내시면서부터, 허리를 다치시며 병상에 누워계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가끔씩 철새처럼 나타나서 음식만 챙겨서 달아나는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단순 우울증 같아서 자주 전화하고 찾아뵈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분노는 끝이 없었다. 부랴부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고, 공단에 연락하여 등급을 받았으며, 2년 전부터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신다.


아빠의 경우는 엄마와 달랐다. 감정 표현도 거의 하지 않으시고, 식사도 거른 채 홀로 텔레비전만 보시거나, 길게 주무시는 모습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아빠를 지켜보다 결국 새언니가 모시고 같은 단계를 진행하여 1년 전부터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신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황에서 가족들이 노력을 했던 경우이니 조기 발견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가족이 영화에서 본 그런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정지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순간 내가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치 『도둑맞은 편지』에서 모두 다 찾아 헤매던 편지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눈에 띄는 상태로 있었던 것과 같았다. 나는 글을 쓰며 삶을 되돌아보고, 글을 쓰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글쟁이었으니까.


애석하게도 내가 쓰던 마지막 글쓰기는 논문이었다. 학생도 많지 않은 지방의 대학원에서 예전에 글을 좀 쓰던 학생이 들어왔다고 해서 한 교수의 레이다에 걸렸다. 자신감 없이, 늘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나에게 그 분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 분을 예리한 감성을 지닌 20대에 만났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따위로 감격하며 아무런 의심없이 지도교수로 선택하였다. 학생의 미래보다 본인의 명예와 업적이 더 중요한 분이라는 것을 미처 판단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몇 번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지도교수 변경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가차 없이 버려졌다. 내 논문도, 내 글쓰기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한동안 노트북 전원도 누르지 않았으니 시리고 아팠던 감정은 오래 지속되었다. 물론 연락을 드리거나 따로 만난 적도 없지만 자주 꿈에 등장하니 괴로울 뿐이다. 다시는 이 세계에 발을 딛지 말아야지, 다시는 공부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이제는 책과 글쓰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독자가 되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아낌없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글을 쓴다. 더 이상 상을 받고 싶어서, 학위가 필요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생각만큼 상도 받지 못했고, 직업이 될 만큼 재능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어느 순간 모든게 정지해버린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결할 수 없어도, 버려도 끝이 없고 치워도 끝나지 않는 쓰레기와 빨래 전쟁을 겪어도, 가족끼리 겹겹이 쌓인 오해와 갈등을 해결할 힘이 없어도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자유롭다. 나는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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