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치매 가족이 있거나 내가 치매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에는 우리집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했다. 가끔 뉴스에서 나오는 나와는 상관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족이 우리 부모님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나 역시 모든 결과를 부정하고 싶었고, 극도의 불안한 상태를 겪었다. 너무나도 당황해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것 같다. 혹시 주변에 치매 가족이 있거나 내가 치매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가족들을 힘들게 하여 불화를 일으키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은 치매는 환자 본인과 특히 그 주변에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으니 방법을 찾으면 된다. 우리에게 긴 여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파하고 무너져야 할 마음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천천히 단계를 진행했으면 한다.
부모님께서 평상시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주변에 있는 보건소 치매 안심센터를 다녀오는 것을 권한다. 말 그대로 우리 가족에게 닥친 문제를 안심시켜주는 곳이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검사를 진행해 보고, 절차를 안내를 받아 병원을 다녀오고,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검사를 의뢰한다. 공단에서 가정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보호자에게 연락을 주며, 주의사항도 알려주니 크게 준비할 것도 없다. 이 과정까지 거쳤으면 지역사회에 우리 부모님을 보낼 단계이다. 단 우리집의 경우는 부모님께서 움직이시고 식사하시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도 미리 전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듯이, 치매 부모를 돌보기 위해서도 마을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 자식의 노력은 한계가 있고, 부모 마음의 어두운 자리까지 채워줄 수 없으니 혼자 애를 태워봤자 변화되는 것은 거의 없다.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듯이, 지역사회에서 우리 부모를 돌보게끔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처음에는 꺼려하시던 부모님도 주간보호센터에서 만난 선생님들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 앉는 짝꿍 때문에, 맛있는 식사 때문에, 재미있는 프로그램 때문에 가신다.
그렇게까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분노를 터뜨리셔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엄마도 편안해지셨다. 생각보다 약의 효과는 크고,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니 부모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구분했으면 한다. 내가 자책하고 눈물을 흘려봤자 부모의 우울증과 인지 장애를 무슨 방법으로 호전시키는가. 부모의 문제는 그 누구 때문도 아닌 장수의 축복으로 겪는 노인성 질환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의사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도 지혜로운 처사이다.
이렇게 부모님께서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게 되면 요양보호사님들의 노고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우리집은 치매 부모 단둘이서 생활한다는 것을 아시고 가끔은 집까지 들어오셔서 부모님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아이처럼 달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보호자를 대신해 주시는 그 분들은 치매 가족에게 한 줄기 빛이다. 그러니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졌는데 살아서 뭐하나, 힘들게 돈은 벌어서 뭐하나 따위를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전문가이다. 우리에게 치매 환자는 처음 겪는 낯선 일이지만 그 분들은 수도 없이 겪었다. 보호자가 말해도 듣지 않는 어르신을 달래서 식사도 도와드리고, 옷도 갈아입혀 주시고, 활동에도 참여하게 해주시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니 혼자 무언가를 하려고 애를 쓰지 말고, 전문가를 찾자. 치매 가족과의 동행은 길고도 먼 여정이니 늘 전문가와 함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치매 가족이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 자식을 힘들게 하며 사셔서 뭐하냐, 어차피 좋아지지도 않을 건데 빨리 요양원이나 알아봐라 따위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요양원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익숙한 집에서 가족들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서 보호자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결정하는 순간이 온다. 그 때는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한 마디 해주시면 된다. 너무나도 치매 부모를 사랑해서 푸념처럼 하는 말이니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고 큰 위로가 된다.
이제는 우리가 보호자가 되어 부모를 보살피고 동행해야 하는 치매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는 부모님을 잘 알지도 못하며,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감정과 의욕만 앞설 수 있다. 치매 문제를 안심시켜주는 지역사회 도움의 손길을 찾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부모님의 말도 안 되는 분노나 이상 행동도 의사 선생님께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 보자. 부모님을 모시고 여러 단계를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치매나 노인 문제를 대비하는 시스템을 잘 구비해 놓았으며, 요양보호사님이 얼마나 전문가인지 느껴지는 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부디 당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기를.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