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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 Feb 14. 2020

요즘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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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죽음’은 항상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멀어지기 위한 좋은 자극제였다. 여전히 나의 큰 관심사이자,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역시나 늘 가까이에 ‘죽음’을 두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배부른 소리이기 때문에 감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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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은 더 잘 살아보면 좋겠고, 유한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언젠가 다가올 나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는 것이 좋지. 그래서 조금은 이른 준비과정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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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런저런 좋지 않은 생각이 가득했을 때 즈음부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참 두려웠다. 그나마 내 안의 아주 티끌 같은 의지, 어쩌면 미련이 그 상황을 박차고 나올 수 있도록 ‘유서’라는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딴에 안간힘을 쓰며 노력한 나름의 방법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 티끌이 꽤 기특한 일을 했구나 싶네. 지금은 건강한 사고와 나름의 의지가 가득하니, 나쁘지 않은 상황을 즐기며 훗날을 위한 하나의 계획표처럼 유서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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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유서는 주체할 수 없는 우울감과 슬픔의 감정을 쏟아내는 하나의 탄원서와도 같았다. 감정을 쏟아내기 바빴던 그 시간의 유서는 사실 다시 꺼내어보기 힘든 글이 가득하다. 어쩌면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싶어 그 유서는 내 안에 묻어두기로 했다. 이듬해 한결 가벼워진, 아니다. 달라진 나의 모습으로 새로운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유쾌하게, 다른 누군가가 발견하였을 때 피식 웃을 수 있는 유서였다. 나름의 아쉬움도 담았고, 삶에 대한 미련도 담았다. 멀게는 영화속에서 종종 보이는 웃음 가득한 장례식을 목표로 그리고 올해 또 다른 마음가짐의 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유서를 쓰고 있다. 건강한 ‘죽음’을 위해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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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지 않은 이별은 쓸데없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상처만 남긴다. 오해를 만들기도, 무엇보다도 상처주기 싫다. 나를 위해서 쓰기 시작했지만 내가 사라진 이후 그 아주 잠깐의 순간을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로 했다. 그래서 보다 더 체계적으로 유서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계와 관계, 사생활까지 다양한 카테고리를 나누어 써 내려가다 보니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내 마음 챙기기에만 급급했는데,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기도 한다. 조금은 어른이 된 기분도 들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들을 즐겨야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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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반대의 무언가를 통해, 고민하는 일의 답을 찾을 때가 있다. 나에겐 ‘유서’가 그런 의미다. “제가 요즘 유서를 쓰고 있어요” 한 마디에 모든 사람들이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걱정을 거두어간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나는 잘 살고 싶거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그래서 나는 요즘 ‘유서’를 쓴다.

그 말인즉슨 나름 나쁘지 않게 지내고 있다는  말이야. (가나다라마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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