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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n 15. 2020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한경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마음에 인사를 건넬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를 때, 사진을 통해 내 마음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이자 심리상담사로 활동 중인 한경은이 말하는 사진치료. 그리고 어쩌면 오늘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사진으로 경험하는 여자들의 몸풀기’ 프로그램>

결국, 그 겨울 깨진 손톱 조직은 영원히 낫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후로도 손톱은 자주 깨지고 종종 아팠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나에게 손 내밀어 주기로 했으니까. 꿈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이제 들으니 내 목소리였다. - 참여자 A (30대)

발을 디디는 대지의 힘, 많은 노력을 하네. 그냥 서 있어도 되는데 힘을 주고 있어. 그러나 다행히 한 발은 힘을 주지 않아서 숨을 쉴 수가 없네. … 이제는 몸에도 표정이, 색깔이, 감정이 있다는 것. 얼굴에만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말하는 몸의 표정을 바라보는 작업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나의 몸이 얼굴에 표정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 그것이 감사하다. - 참여자 B (50대)



한경은이란 이름은 ‘작가’로 더 익숙하다. ‘누군가를 치유’하는 영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힌 이유는?

나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몸과 기억’이다. 낸 골딘, 니키 드 생팔처럼 나 역시 창작 활동으로 내 마음을 치유한다. 처음부터 예술의 치유 기능을 인지하고 작업에 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을 뿐인데, 그 길 위에서 감정이 분출되고, 정화되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치유의 물꼬를 튼 건 출산 후 몸에 대한 수치심을 자각하고, 내 몸에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참여자들이 직접 쓴 ‘자신의 인생이나 몸에 대한 짧은 글’과 ‘복부 사진’을 결합한 작업 <Voice>를 제작했고, 지금까지 ‘치유적 사진’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몸으로 입혀진 내면과 대면하고, 그 육성을 드러내니 내 몸을 바라보는 일이 편안해지더라. 시간이 흘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임을, 다시 말해 ‘치유’임을 자각했다. 말하기의 중요성을 경험한 뒤 한국사진치료학회 사진치료사 과정에 참여했고, 통합예술치료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한국사진치료학회 학술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얼마 전, 심리치유에세이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를 출간했다.


작가, 심리상담사로 활동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언젠가 나의 마음 선생님이자 페미니즘 잡지 <if>의 박미라 선배가 왜 본격적으로 치료 공부를 안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지만, 그의 말이 “이제 때가 됐어. 잘 할 거야.”처럼 들렸다. 이것이 계기가 돼 심리 상담의 길로 들어섰다. 동시에 작가 활동, 학생들 가르치는 일도 했다. 일인 다역을 하다 보니, ‘중년 이후 직업적인 정체성은 하나로 정리되는 것이 좋다.’라는 말과 ‘정체성은 개인적·인습적 수준을 넘어 유연하게 작동한다.’라는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날을 돌아보니 다양한 활동 근간에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더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겼을 뿐. 이를 계기로 나의 정체성에 붙어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게 됐다.


사진치료가 다른 상담 방법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예술에는 ‘표현의 힘’과 ‘관계의 효능’이 있다. 모두 ‘치유’의 속성을 지닌다. 앞서 말한 작가들처럼 표현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기도, 작품 감상을 통해 정서를 순화하기도 한다. 이 연장선에 ‘사진치료’가 있다. ‘사진치료’는 사진을 도구로 사용하는 치유 행위다. 핵심은 사진을 찍고, 감상하는 것. 사진이란 매체는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두 ‘바라보는 행위’를 기반으로 한다. 회화와 달리, 사진은 바라보는 대상이 필요하다. 다만, 렌즈와 사물이 닿아있으면 사진은 상을 담아낼 수 없다. 최소한의 초점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눈으로 대응되는 렌즈와 타자 및 세계를 지칭하는 피사체, 이 둘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사진 이미지로 창조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치유적 행위’와 유사하다.




<청소년 대상 사진치료 프로그램>

서울 S고등학교 위클래스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결과물. 기억 속 어떤 감정 혹은 장면을 사진으로 재연한 다음, 주변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당시 감정을 재경험·재인식하며, ‘그때의 나’, ‘지금의 나’를 진솔하게 만나볼 수 있다.

서울 J중학교 위클래스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결과물. 그림자를 통해 하얀 나(왼쪽)와 검은 나(오른쪽)를 표현했다. ‘하얀 나’는 긍정적인 모습을, ‘검은 나’는 부정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객관적으로 내면을 바라보는 방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진은 보이지 않는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20세기 중반 현대사진은 기록성, 사실성을 넘어, 내면세계의 표출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진입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Equivalent>가 그 효시로, 작업은 구름의 내적 의미를 암시하고,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사진은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진 매체가 갖는 관계 지향성은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 ‘사진 찍기’라는 만남의 행위로 완성된다. 치유적 사진 예술체험을 하는 참여자는 사진을 찍고, 고르고, 오려 붙이는 과정 안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투사하는 동시에 감정을 표현하고, 그럼으로써 억압과 방어를 해소하게 된다. 아울러 사진 이미지로 투사된 자신의 내적 욕구를 인식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진 이용의 장점

왜 이 사진을 골랐는지, 어떻게 느껴졌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지 등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다. 가령, 무작정 ‘가족’을 화두로 던질 경우 저항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사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진에는 위험(심리적 저항)이 도사리고 있다. 투사가 강한 탓이다. 하지만 감정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상담을 할 때 사진과 글쓰기를 자주 결합한다. 사진이 나에게 하는 말을 써보고, 반대로 내가 사진에 답장하는 형식이다. 사진이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이라면, 글쓰기는 인지적이다. 둘을 결합하면, 통합적으로 자신을 다룰 수 있다.


사진치료 기법 중 ‘내담자가 찍은 사진’, ‘자화상’의 차이점은? ‘사진치료’와 ‘치유적 사진’ 관계일까?

‘사진치료’는 훈련받은 전문가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기 위해 사진을 이용하는 활동이고, ‘치유적 사진’은 자아 발견이나 심미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 사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셀카를 찍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면, 이는 ‘치유적 사진’으로 기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진치료’라는 범주 아래, ‘내담자가 찍은 사진’과 ‘자화상’ 사이엔 커다란 차이가 없다. 단, 자화상 기법을 재연치료에 사용할 경우 상담자가 있어야 안전하다. 유년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내담자가 그때 상황을 자화상으로 표현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감정이 극대화될 수 있으므로 상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치료와 치유의 경계가 모호한 듯하다.

치료는 ‘병을 고치는 것’이고, 치유는 ‘병을 낫게 하는 것’이다. 치료의 주체는 의사/심리치료사, 치유의 주체는 환자/내담자다. 예술을 통한 심리 상담은 ‘치유’에 방점을 둔다. 자존감과 내면의 힘을 스스로 회복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치료라는 말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같은 정신/정서장애 진단을 받은 내담자를 대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의식 성장을 위한 치유의 개념’이다. <여자들의 몸풀기>의 경우 전문가가 안내하는 ‘치유적 사진 활동’으로 봐야 한다. 참여자는 정서적·정신적 문제가 없는 일반 성인 여성이었으며, 그중 참여자 B는 실제 심리상담사였다. 그러나 진단명이 없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상처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을 테니까.





< 무의식과 의식적인 작업 모두 아우르는 사진치료 프로그램>

포토콜라주를 통해 나도 모르는 나, 나의 무의식을 직관적으로 살필 수 있다. 사진을 뜯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은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날카로운 가위로 자르는 행위는 우리의 공격성, 사디즘적인 욕구를 채울 수 있으며, 끈적끈적한 풀로 붙이는 행위는 의존성, 마조히즘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꿈꾸는 것을 상징하는 사진을 고른 후, 빔프로젝터에 투영시켜 마치 실제 꿈을 이룬 것처럼 표현해 보는 기법. 내면의 힘(긍정적인 자아상)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활동이다.



내담자가 찍은 사진이 없다면, 어떻게 심리상태를 파악하는가?

내담자가 찍은 사진이 없을 경우, 인터넷, 잡지 등에서 수집한 사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때 수집한 사진들의 공통점을 살피면, 정서 상태, 관심사, 욕구 등을 알 수 있다. ‘사진치료’라 하면, 대부분 타로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는 불가능하다.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사진을 반대로 선택하는 일도 있고, 분명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 사진이 있음에도 선택하지 않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릴 때는 ‘나만의 방’을 찍어보는 방법도 있다. 자신을 직접 노출하지 않으면서, 거리를 두고 자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에는 주인의 정서가 깃들어 있지 않나. 사진을 보며 방주인의 성격, 방주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일상에서 미흡한 부분(정리, 청소 같은) 등을 깨달을 수 있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몇 번쯤 만나야 효과가 있을까?

오늘 찍고, 선택한 사진이 나의 심리를 절대적으로 반영하진 않는다. 단 한 번의 상담으로 치유됐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직면하기를 회피하며 상태가 더 나빠진 사람도 있었다. 사실 심리상담을 한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100% 치유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통, 결핍, 상실 등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찾아온다. 다만, 이들을 마주했을 때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와 방법을 배워나갈 뿐이다.


일대일 상담과 집단 상담 중 효과적인 것은?

일대일 상담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때 진행한다. 반면, 집단 상담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관계성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안에서 내담자는 내가 타인의 시선에 영향받고, 또 내가 타인과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공감 받고, 지지 받는 것도 힘이 된다. 단, 판단, 평가, 충고는 금지다. 비밀 보장 역시 필수다. 또한, 집단 상담이 모두 끝날 때까지 서로 연락 주고받는 것을 지양해달라고 한다. 둘의 관계(예를 들어, 다툼에서 기인한)가 집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누군가를 치유하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는가?

종종 상담 현장에서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때가 있다. 함께 눈물 흘릴 때도 있고, 애써 참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관계 맺음’에서 얻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크다. 한때 고통에 관심이 많아 ‘고통 전문가’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통의 원인, 이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에 집중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 자체보다, 고통받는 사람에 눈길이 간다. 사진 심리상담을 십여 년 하다 보니, 그동안 고통받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음, 고통을 떨쳐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배우고 있다.


사진가 이상재가 운영하는 ‘사진온실’과 협업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안내자가 개입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한다. ‘사진온실’도 치유 목적이 크다. 사진가와 사진기를 보지 않는 대신, 거울 속 마주한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개인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 아닌가.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을 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추후 어떻게 다시 사진을 찍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하며, 참여자가 자신의 정서와 일상을 점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202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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