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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Mar 07. 2018

대단하지 않은 예술

박희자

<Art School Project>


변해버린 그녀 모습에 놀랐다. 최근 공개한 작업에서 스테레오타입처럼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가 박희자 하면 딱 떠오르는 고유 브랜드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너무 낯설어서 혹여 작가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가 제일 먼저 궁금했다. 그런데 작업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니, 꽤나 괜찮은 느낌이다. 기존 작업, 콕 집어 얘기하자면 <The Women of Island>를 볼 때는 숨어있는 텍스트를 알아내기 위해 사진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신작 <Art School Project>는 전작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질지라도 오랜 잔상이 남을 만큼 인상적인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수평 수직을 칼 같이 맞춰 여백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전작들의 프레이밍 역시 눈에 띄게 자유로워졌다. 흡사 요즘 유행하는 날것 냄새나는 사진과 비슷하다. 밝은 톤은 유지하되 오브제의 배치는 자유로워졌고, 유머러스함과 키치함이 넘쳐난다. 시각적으로 놀라운 변주다. 마치 불면증에 시달리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바흐(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작가 역시 <Art School Project>를 통해 사진이라는 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하다(흥미롭게도 작가의 영문 성은 바흐와 비슷한 Bahc이다).


<Art School Project>


정제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예술

<Art School Project>는 박희자가 체코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의 결과물이다. 작업은 무력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체코에서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그런 고난 속에서 사진가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라보기’였다. 

체코는 보다 자유롭게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아직은 주류 미술계의 영향을 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정제되지 않은 그들의 예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학교라는 공간, 이곳에 방치되어 있는 오브제들, 분명 작업은 아닌데 더 작업 같이 보이는 것들에 작가의 마음이 동했다. 중간자의 입장에서 자유분방한 그들의 예술을 즐겼고 그들과 마주하며 느낀 것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도 얻었다. 작가에게 예술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들을 나만의 시선과 생각으로 재탄생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즉, 누군가에겐 하찮을지 모르는 존재가 작가의 숨을 받음으로써 예술로 새로이 태어난다는 의미다.


<Art School Project>


자아도취는 나의 힘

이렇게 탄생된 <Art School Project>는 연애 후에 남겨진 것들을 집요하게 추적했던 <When Love Comes>나, 서른이 넘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자책에서 시작된 <Women of Island>와는 다른 뉘앙스다. 예술이라 쓰고 고통이라 읽는 것들에서 해방된 느낌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인정한 부분이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무를 덜어내니 마음이 편해졌다. 비록 세상에 이름을 알린 작업이지만, 작가는 <Women of Island>를 하면서 지루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매번 동어반복(피사체 선택, 카메라 배치, 구도 등)을 하는 것이 정작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진은 이래야만 한다는 통념에서도 벗어났다. 사진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는 말을 세뇌 당하듯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니 ‘요즘 누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느냐’는 말이 들렸다. 그저 사진이 좋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체코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은 그녀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예술이 거창한 것이 아닌, 자유로운 것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무기력함을 이겨내도록 도와준 또 하나는 사사키 이타루의 책 <이 치열한 무력을>이다. ‘나는 너무 작은 존재이고, 세상엔 무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은 미미한 존재라서 큰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말에 공감했다고 한다.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지만 그녀는 하루하루를 더 치열하게 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매일 촬영을 했다. 예술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이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 바로 <Art School Project>다. 그 믿음대로 작가는 기존을 넘어선 작업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기력함에서 시작되지 않은 작업은 어떤 변주를 그려낼까. 후속작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2016.05]




박희자 서울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에 재학 중이다. 2014년 제15회 사진비평상 작품상 부문을 수상했다. 세 차례의 개인전과 열 세 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른 즈음의 여성에가 찾아오는 삶에 대한 정체감, 이로부터 파생되는 감정적 충돌을 드러내는 포트레이트 작업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내리는 작업을 했다.  www.heezabah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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