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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Aug 29. 2021

시골이 뭐가 좋아서 여름 첫 손님은 파리

시골생활필수품 - 파리채



 마당 잔디 군데군데 초록색이 퍼지더니 달력이 6월로 넘어가자 금세 잡풀로 마당이 가득 찼다. 나는 아침에 현관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훈기와 살짝 비릿한 풀내음이 좋아서 아이들에게 공유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운동화를 바로 신기도 전에 마당으로 달려가 윗채 아이들을 불러댔다.

 "오빠 학교 가자!!"

 그 어수선한 잠깐 동안 열린 우리 집 현관으로는 파리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등교 버스에 손을 흔들어주고 집에 돌아올 때면 오늘은 몇 마리나 들어와 있을까 기대(?)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 첫 일정이 파리 잡기가 되자 방이고 부엌이고 늘 창문을 열어두는 여름이 왔음이 실감 났다.


 처음 파리가 들어왔을 때는 창문의 방충망까지 싹 열고 느긋하게 부채질을 하며 파리가 스스로 나가주길 기다렸다. 재빠른 파리를 잡기 힘들기도 했고 살생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파리는 한 마리를 내쫓으면 세 마리가 들어오는 식으로 집 안에 끊이질 않았고 귓가에, 머리 위에 웽웽 거리며 다니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차려둔 음식에 달라붙어 맹렬하게 손을 비비는 모습을 보니 '진짜 죽이고 싶다.' 하는 살의가 느껴졌고 나는 파리채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예쁜 파리채를 사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배송비가 비싸서 읍에 나가 다이소에서 분홍색이 매끈하고 산뜻한 파리채 구입했다. 500원쯤 주고 산 파리채는 귀염성 있게 생기긴 했지만 몇 번 내리치니 모가지가 부서져 버렸다.

 "파리채는 클래식한 게 최고야"

 몇 해 전 귀촌한 친구의 조언에 따라 하나로 마트에서 파는, 색깔에 촌스러움과 경박함이 함께하는 전통 파리채를 구입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생에 처음으로 텃밭을 가꿔보는 중인데 세계인이 극찬하는 호미에게는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예의 익숙한 물건인 탓인지 나에게 호미는 그저 호미인데 전통 파리채는 아마존에다 판매하고 싶을 정도로 자랑스럽다.


 파리채만 있다면 파리를 잡는 일이 어렵지 않다. 파리 아닌 그 어떤 벌레도 세차게 내려지면 죽기 마련이다. 처음 파리를 잡을 때 나는 죽은 파리를 몇 번이고 더 내려쳐서 아예 가루를 만들곤 했다. 덜 죽은 파리가 다시 날아 올라 나를 덮칠까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내 손으로 생명을 죽였다는 끔찍함이 치를 떨게 싫어서 더 신경질을 부렸다. 해충을 죽여도 이렇게 오싹한데 실수로 로드킬을 하면 얼마나 더 찝찝할지 나는 상상으로도 부르르 떨려서 웃기게도 파리채를 구입한 이후 운전을 조심하고 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파리 잡는 일이 우스워졌다. 아이들이 "엄마 파리 있어"하면 숙련된 스매싱으로 보이는 족족 죽일 수 있다. 다만 혹시나 파리채가 또 부러질까 조금 염려될 뿐이다.


 파리채의 본격 활동은 아이들의 칠칠치 못한 문단속 때문에 더 가속되었다. 윗채 아이들과 우리 집 애들 그리고 먼저 귀촌한 친구 아이까지 5~6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 집 문, 저 집 문 활짝 활짝 열어두면 파리와 모기가 블랙프라이데이에 밖에서 줄 서있던 사람들처럼 재빠르게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윗채 친구와 나는 아이들이 실컷 놀도록 내버려 뒀다가 해질녘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면 매서운 파리채 질을 해댔다. 사실 그때 파리채 질이 독해지는 데는 파리를 죽이겠다는 목표를 넘어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목적도 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다 함께하며 뒤섞여 놀다 보니 다툼과 화해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는데 간간히 어른이 개입해서 상황을 진정시키고 나면 진이 빠지기도 하고 근심이 생기기도 했다.

 파리를 내리치며 이 한 번의 스윙이 내 아이의 등짝을 내려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될 때는 육아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탁해졌나 싶은 생각이 눈물이 받치는 것이다. 시골로 이사할 때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큰 목적 중 하나였는데 아이를 때리는 심정으로 파리를 죽이다니..


 어느 날 세명의 엄마들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각자의 고민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이들에게 규칙을 만들어 주자고 입을 모았다. 사실 상 큰 틀을 엄마들이 만든 후 아이들이 세부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지키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마을 어린이 규칙'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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