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은 해열제를 주지 않아요.
무더위와 손님 방문이 반복되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이 왔다. 남쪽, 서쪽으로 창문을 내고 있는 단칸방에는 알람시계 말고 아침햇살이 우리를 깨워주는 모닝콜인데 그날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와 기죽지 않고 울어대는 참매미 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전부터 코를 훌쩍 거리는 둘째를 등원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있는데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 첫째의 등허리가 구부정해 보였다.
"엄마 나 왜 이렇게 어지럽지?"
다시 이불 위로 풀썩 몸을 던지는 첫째에게 슬며시 가서 이마를 짚어보니 확실한 열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둘 다 쉬자"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요즘 시국에 미열이 있는데 등교를 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이불을 개고 방을 닦고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며 마치 주말같이 여유 있는 하루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 둘은 거실에서 아웅다웅 놀았기 때문에 미열이 있는 첫째의 체온도 재어 보지도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첫째의 양 볼이 무척 상기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자리에 눕히는 게 낫겠다 싶어 방 한편에 이불을 깔고 아이에게 누워 있어 보라고 했더니 첫째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야 나는 첫째의 몸상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깨닫고 브라운 체온계를 찾았다. 오전 10시경에 38.2~38.4를 왔다 갔다 하다가 12시경에 39.6까지 열이 올랐다.
우리 집에는 해열제가 없었다. 시골로 이사한 초기에 상비약으로 사다 둘까 했지만 윗채 친구 집에 해열제가 있다고 해서 구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째가 아프던 날은 윗채 친구가 부산 집에 다니러 가 있었기에 약을 빌려올 수 없었다. 먼저 귀촌한 친구한테 약을 좀 사다 줄 수 있겠냐고 연락을 했더니 그의 남편이 바로 전날 코로나 확진자 밀접 접촉자와 만남을 가져서 밀접 접촉자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든 해열제를 구해야 하는데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도움 청할 곳이 없었다. 잠시 잠에서 깬 첫째에게 엄마가 약국에 다녀올 테니 동생과 잠깐 집에 있을 수 있겠냐 했더니 그때부터 막무가내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분명 열이 39도가 넘는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온 몸을 이용해 자신의 불안을 표현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날, 그 순간만큼 정신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누나가 놀아주지 않고 잠만 자는 게 불만인 둘째를 감당하기 벅찬 때에 첫째가 울자 그야말로 혼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저렇게 울면 열이 더 오를 텐데'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시 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진정이 된 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를 구해줄 사람, 나에게 해열제를 가져다 줄 사람으로 2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남편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게 윗채 친구네 집은 비밀번호가 있는 자물쇠로 출입문을 잠가둔 상태라서 친구에게 사정을 말하고 비밀번호와 해열제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남편은 119에 전화해 해열제를 얻어보자고 했다. 실제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소방서와 보건소가 있어서 약은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공무원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부탁하는 꼴인 것 같아 전화하기가 망설여졌지만 첫째의 열이 39.6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으므로 119 버튼을 눌렀다.
나는 전화를 받으시는 119 대원에게 아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번에 해열제만 가져다주시면 다음번에 소방서로 방문해 꼭 인사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단순한 내 생각에 나는 119에 전화를 하면 가장 가까운 면단위 소방서에서 전화를 받으실 줄 알았는데 실상은 경남의 모든 전화는 창원에 있는 센터에서 접수하신다는 것이다. 나와 통화를 하신 대원분은 아이가 39.6도라는 말에 엄청 놀라시며 최근에 방문한 지역과 식당 등의 기록을 다 가지고 있느냐 혹시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곳이 있는지 확인 가능하겠느냐 물으셨다. 다시 한번 나는 멘털 붕괴. 나는 코로나와 관련한 이슈는 전혀 없고 단순 몸살인 것 같으니 접수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너무 고열이라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하고 코로나 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이미 구급대원이 출발했고 15분 뒤 도착 예정입니다."
아... 투철한 직업 정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미 대원이 출발했다는 말에 나는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이 비를 뚫고 15분을 달려 구급대원이 내 집에 온다고? 중경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여기 온다고? 나도 자가용이 있는데? 차로 5분이면 해열제를 구할 수 있는데?'
밖에는 앞이 가늠이 안될 만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는 눈물이 없다. 가끔 막 울고 싶어 질 때가 있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나는 빗줄기가 내 눈물이길 바랐다. 내 눈에서 흘러 저렇게 쏟아지는 것일 거라 믿고 싶었다.
진짜 딱 15분 뒤 구급대원 3명이 우리 집에 왔다. 뉴스에서만 보던 방역복을 입고 오셨다. 자다 깬 첫째는 흰 비닐로 온 몸을 감싸고 계신 그분들이 공포스러웠는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내 머릿속엔 얼른 해열제를 얻어 저분들을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공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듯한 기분에 짓눌려 있던 나는 '아니야. 나도 세금 내는 시민인걸? 저출산 국가에서 아이가 아픈데 구급대원 3명 부르는 게 뭐 어때서?' 하며 억지를 부리며 구급대원분께 해열제만 좀 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구급대원은 약을 처방할 수 없습니다."
"예???!!!!"
세상에나. 나처럼 상식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구급대원은 약을 안 주시는구나. 약을 안 주셔. 해열제도 약이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약사가 주시는 약이었어. 편의점에서도 부루펜을 살 수 있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복용하는 약을 주시지는 않으시지. 암. 그럼.
방역복으로 완전 무장하신 구급대원이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다주실 수 있지만 법적으로 구급차에는 환자 1명, 보호자 1명 외에는 탈 수 없다며 5살 난 둘째를 바라보셨다. 저 애를 떼 놓고 응급실에 가자는 말을 뱉고 나서 본인이 겸연쩍어하시는 것이다. 나도 차가 있으니 비가 조금 그치면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또 한 번 난감해하셨다. 아이 열이 확실히 떨어지거나 응급실 이송이 아니면 돌아갈 수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첫째만 구급차로 응급실에 가고 나와 둘째는 자차로 이동하는 방법은 어떻겠냐는 말씀에 잠든 줄 알았던 첫째가 번쩍 눈을 뜨고 발작하며 울기 시작했다. 구급대원이 얼른 열을 재어 보시더니 40도에 가깝다며 무조건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하시고 그럴수록 첫째는 더 격렬하게 울었다.
친절하고 지혜로운 구급대원께서는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 열을 내려보자고 하셨다. 그것은 평소에 내가 절대 쓰지 않는 방법이다. 일시적으로 열을 뺏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1년에 한 번쯤은 꼭 몸살이 나서 고열을 앓곤 하는데 나는 아이의 곁에 계속 머물며 열을 체크하고 39도가 넘으면 이마에 물수건을 해주고 해열제를 먹인다. 몸에서 강한 열을 내어 병균과 맞서 싸우길 응원하다가 39도 정도 되면 해열제라는 쉬는 시간을 주기도 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간호해왔다.
이번엔 평소의 규칙을 깨고 물수건을 준비했다. 열이 떨어져야 구급대원들이 지역과 사회를 위해 일하러 돌아가실 수 있다. 나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울고 있는 첫째에게 만화를 켜서 보여주고 물수건으로 배와 등을 닦았다. 만화에 눈길을 맞춘 첫째는 좀 진정되어 보였다. 웬일로 둘째가 조용해서 뒤돌아 보자 구급대원 중 막내로 추정되는 분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계셨다. 그제야 세분의 대원들을 찬찬히 살펴봤는데 의료용 장갑을 끼고 계셔서 손에 땀이 미끄러질 만큼 나고 있고 비닐 모자와 마스크로 뒤덮인 얼굴은 어딘가 쾡해 보였다. 덮고 습한 날씨에 얼마나 고생이실까. 10여분 뒤 첫째의 열이 38.7까지 떨어지자 그분들은 일어나셨다. 가시는 뒤에 대고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를 연방 외쳤다.
예상대로 첫째는 다시 열이 올랐다. 창밖에는 비가 그치고 있었다. 나는 첫째를 토닥여 재우고 그 옆에 누워 방금 있었던 난리를 복기했다. 그야말로 기진맥진. 참매미 소리로 가득한 창밖과 만화를 보여달라는 둘째의 아우성. 지쳐 잠든 첫째의 쌔근거림. 그 모든 소음이 웬일인지 고요하게 느껴지는 집안이 그렇게 아늑할 수 없었다. 첫째의 열이 여전함에도 둘째의 칭얼거림이 심해짐에도 폭풍우가 지나간 잠잠하고 깨끗한 바다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리 판단력이 흐려져도 그렇지 코로나 시국에 119 구급대원을 부르다니'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하다. 아이가 아프니 멍청한 머리가 더 멍청해졌다.
그날 오후 늦게 먼저 귀촌한 친구가 해열제를 사다 줬다. 아이는 여전히 불덩어리였지만 해열제를 손에 넣으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당장에 해열제 값을 친구에게 보내줬다. 이로서 이 해열제는 완전히 내 것! 다시 119를 부를 일은 없다. 그러나 두 달 후 나는 또 119에 전화를 했다.
다음 편도 꼭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