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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Jul 09. 2021

2009년, 어느 날...

[포토샵으로 만든 일본 여행기]

2009년, 어느 날...

(포토샵으로 만든 일본 여행기)


2008년 초에 DSLR 카메라를 샀다. 

형편이 어려워 새 카메라를 사지는 못하고 비운의 명기(?)인

'Canon EOS 30D'를 중고품으로 샀다. '캐논 EOS 30D'가 비운의 명기인지는 모른다. 

나는 그냥 내 카메라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Canon EOS 30D를 '비운의 명기'라 부르는 것은 대부분의 "비운의 뭐시기..."라

불리는 제품들이 가진 슬픈 사연을 이 카메라가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EOS 30D는 DSLR 카메라가 세상을 지배할 당시 캐논 라인업에 애매하게 끼어 

얼마 생산도 못하고 사라져 버린 카메라이다. 


2008년 즈음은 디지털카메라 열풍으로 카메라 메이커를 비롯한 전자제품 및 필름 회사들이 

저마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DSLR 제품을 마구마구 쏟아내던 때였다. 당시 선두 주자였던 

'캐논'도 마찬가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종을 출시했었다. 


캐논 EOS 30D는 '준전문가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시됐는데, 이전 모델이던 

'캐논 EOS 20D'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서 후속 기종이던 '30D'는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30D'는 이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는 

이름만 업그레이드된 기종이었다. 아마도 신제품의 출시 시간이 지연되면서 캐논이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30D가 출시되고 1년 6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든 면에서 월등히 향상된 

후속 모델 'Canon EOS  40D'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니 '30D'는 사실 매장에 깔리기도 

전에 '40D'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이런 물건은 성능도 떨어지고 희소가치도 없어서 중고가가 싸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결국 멋모르고 새 제품을 산 사람만 된통 당한 꼴이었다.  


나는 중고 '캐논 30D'를 2008년 초입에 아주 좋은 가격에 구입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싼 값에 구입한 건 분명하다. 

이 카메라 덕분에 필름값 걱정 없이 셔터를 마구 눌러볼 수 있었고 디지털 사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카메라가 어느 정도 손에 익었을 무렵 이걸 들고 일본 여행을 떠났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던 때라 해외여행이라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떠났던 나 홀로 배낭여행이었다. 


반일 감정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때였고, 나 역시 일본에 대해서 

나쁜 편견이 없을 때여서 무덕관에서 '검도 시합' 관람이나 신주쿠의 

'가부키초' 구경 같은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포토샵으로 여행기를 작성했다.

당시는 인터넷 게시판에 포토샵으로 글과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여행기는 몇 날 며칠 밤새워 공부해 완성한 내 첫번째 "포토샵 여행기"이다.

포토샵 프로그램은 이미 오래전에  내 컴퓨터에서 사라졌지만 여행기를 읽어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동안 하드디스크를 두 번 정도 잃어버렸다.

그 속에 아마도 많은 사진과 글들이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사라진 사진과 글들이 꽤나 아쉽다. 

온라인에 저장이라도 했으면 이런 후회는 없었을 텐데 

나의 게으름이 내 지나온 삶을 지워버렸다. 


그래서인지 가끔 하드디스크의 구석에서 과거의 자투리들을 발견하게 되면 

사랑하는 이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이 밀려온다.


예전에 쓴 글이고 찍었던 사진이라 과장되고 유치한 구석이 많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여운 자식 같다. 고치고 싶은 문장이 많지만 억지로 손대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이제 포토샵 사용법도 잊어버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

10여 년 전 바라보던 일본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일본은 많이 다르다.

다음에 일본을 가게 될 때는 내게 일본이 또 어떻게 보일까?


분명한 것은 이제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고, 

이런 일이 확인될 때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흔한 한국인이 분명한가 보다.


이 여행기를 작성한 지 꽤 긴 시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한데 내 몸이 그 세월을 받아들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설프지만 포토샵으로라도 당시를 남겨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글과 사진이 남아 있어 시간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2009년, 어느날....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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