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니?"라고 묻지 말 것.

시간을 멈추는 법

by 벼랑끝

(Based on real story)


10살짜리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너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공무원이요."


듣고 있던 사람들이 말한다.

"그놈 참 성숙하네.. l"


중학교 2학년 조카를 오랜만에 만났다. 물었다.

"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공무원이요."

"넌 공무원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아니?"

"동네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일하는 사람요."

"근데 그게 재밌을 거 같아?"

"엄마가 그거 엄청 좋은 거래요. 그거 되면 평생 편히 먹고 산데요.

그래서 저는 공무원 되려고요."


언니인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에게 똑같이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공무원이요."

"대학에서 따로 공부해 보고 싶은 건 없니? 배워보고 싶은 건 없고?"

"그런 거 없어요. 다들 공무원 되는 게 짱이래요. 그래서 그거 하려고요."


친구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에게 물었다.

"넌 뭐가 하고 싶어?"

"공무원요"

"지금 전공하는 거는 재미없나 봐?"

"요즘 전공 공부 하는 애들이 어딨어요? 대학원에서도 다들 취직 공부만 하는데."

"그래? 그럼 공무원이 꿈이네?"

"꿈요? 애들도 아니고 꿈은 무슨...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죠.

그래서 공무원 되려는 거잖아요."

"음~ 그렇구나."(근데, 공무원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인가?)


나는 내가 잘못된 질문을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넌 하고 싶은 게 뭐니?" 혹은 "배워 보고 싶은 게 뭐니?"라든가,

아니면 "어디가 가보고 싶니?"라고 물어봤어야 했다.

'꿈'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라는 걸 후에 알았다. 어쨌든......


고3이 되는 딸을 둔 직장 동료가 있다.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을 끝내며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그래서 물었다.


"딸내미 내년에 대학 보내려면 힘들겠네, 그래도 공부를 잘해서 다행이다."

"이 동네서 공부 잘해 봐야 소용없어요. 강남이나 특목고 애들하고 경쟁이 돼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할 거 아냐."

"생각 중이에요."

"생각 중이라니???"


"요새 지방대나 3류대 나와봐야 취직도 안 돼요.

인서울 졸업해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한데 '스카이' 아니면 대학 졸업장 의미도 없고,

돈은 돈대로 드는데 취직도 못하는 대학 가서 뭐 하나 싶어요."

"그럼 어떡하게?"


"공무원 공부나 시킬까 해요. 자기도 생각 있는 거 같고."

"대학은 안 가고?"

"대학 갈 돈으로 공무원 준비 2년 정도 하면 9급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그게 훨씬 이익이죠. 대학 그거 나도 다녀 봤는데 졸업장 따려고 하는 시간 낭비인 거 같아요.

요즘은 대학 나와도 취직하기도 어렵잖아요. 그럴 바에야 한 2년 바짝 노량진에서 공부해서

공무원 되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잖아요."


"으~~ 응~~~ 그런가? (애한테도 그게 더 좋을까)?"

"공무원만 만들면 아빠 도리는 다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은 지가 알아서 하겠죠."

"그~~ 래, 고민이 많겠다."


연말 술자리에서 누가 내게 물었다. "넌, 꿈이 뭐냐?"

나 포함 5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넌, 꿈이 뭐니?'라는 이 질문을 예전에 아이들에게 한 후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넌 하고 싶은 게 뭐냐?"


"꿈"이란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고 거국적이고 의미가 많은 단어라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나는 내 '꿈'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 꿈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 때문이다.

내 꿈은 "지구에 전쟁과 기아가 없어지고, 평화롭게 문화 예술을 교류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하면, 미인대회에 나오는 참가자들 같은 뻔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게 농담인 줄 안다. 그런데 난 진심으로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꿈'이라는 단어로 말을 시작하면 '하고 싶은 거'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한다.

그래야 대화를 계속할 수 있다.


어쨌든, 연말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했었다.

"있잖아, 세계지도를 보면 말이지....." (주절주절~~)


[꾸미기]탠지어-طنجة에서-수에즈-으-로-Google-지도.jpg 지중해 둘레길, 'A'코스는 갈 때, 'B'코스는 올 때.

세계지도를 보면 유럽과 아프리카 두 대륙을 나누는 바다가 있다.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를 말한다.

지중해의 대서양 쪽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의 아프리카 쪽 도시는 모로코의 '탠지어(탕헤르, Tanger City)'

이다. 나는 여기 '텐지어'에서부터 지중해의 동쪽 끝인 수에즈 운하까지 횡단을 해 보고 싶다. 자동차든 배든 걸어서든 상관없다. 모로코를 시작으로 알제리, 리비아를 지나 이집트 '수에즈'에 도착하는 4,798km 정도의

거리이다.


The.Bourne.Ultimatum.2007.1080p.Bluray.x265.HEVC.10bit.AAC.5.1.Tigole.mkv_20230107_125439.108.jpg '탕헤르 전경'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 캡처)

여길 가보고 싶게 된 데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2007)'에 보면 '텐지어(Tangier)'가

중요한 배경으로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만약 아프리카를 간다면 꼭 '텐지어'에서 시작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유는 이게 다다. 나는 여행의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보고 싶다." 이거 말고 뭐가 더 필요한가?


나이 들어 비싼 아파트의 거실에서 앉아서,

"난 이렇게 큰 아파트를 가졌으니 성공한 인생이야"라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그 아파트를 팔아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택할 자신이 있다.

"넌, 팔 아파트가 없으니까 그딴 소릴하지"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맞다. 나는 팔 아파트가 없어서 이런 소릴 하는 걸 수도 있다.


만약 이 여행을 실제로 한다면 길면 1년 짧아도 3개월은 걸릴 것이다. 돈도 많이 들 것이고

위험한 지역이니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여건이 된다면 가보고 싶다.

이 꿈은 아직 유효하기에 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했다가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다.

'아파트'와 '탕헤르' 이야기를 했다가 죽을 만큼 욕먹은 일을 잠깐 소개하겠다.


※ 참가인원 나 포함 5명,

추운 겨울 어느 날 나의 지중해 횡단 이야기가 끝난 후 답변.


A)

"야, 그건 꿈이 아니야, 미친 짓이지. 네가 집을 팔아서 여행을 갔다고 치자.

그러면 한국으로 안 돌아올 거냐? 올 거잖아. 그럼 그땐 어떡할 건데? 노숙자 생활 해야 돼.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건 꿈이 아냐? 그건 미친 짓인 거야.

'거기 가면 좋겠다.' 뭐 이런 헛된 망상 이란 말이야.


B)

너 여행 많이 다녀봤잖아. 그러니 가 봐야 별거 없다는 거 알잖아.

텔레비전에서 보던 거, 그거 거기 있는 거야.

다큐 채널 같은데 나오는 거, 그냥 그거 거기 있는 거라니까.

다 아는 이야기고 다 아는 그림이고 다 아는 건축물이고 그런 거야.

그걸 보러 돈을 들여 거길 간다고?

젊은 애들이야 사진 자랑을 해야 하니까 거기 가서 인증 숏 찍는 게 중요하지

그거 인터넷에 올려서 자랑해야 하거든 근데 그거 아무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사진 자랑도 솔직히 잠깐 뿐이야. 애들도 금방 그거 알거든. 그래서 변하는 거야.

나이가 들면 사람은 현실적인 꿈을 꿔야지, 비현실적이고 의미 없는 공상 말고.


C)

그런 거 하면 행복할 거 같지?

실제로 다녀온 애들도 나중에 그러더라 그거 별로라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거 말고는

별로 의미 없다고. 돌아와서는 금방 잊는다고, 그러니 그게 보는 것만큼 그리 재밌는 게 아냐.

사진에서 재밌는 척하는 거라니까.

다녀온 애들한테 다시 가겠냐고 물어본 적 있거든.

안 간다는 애들이 태반이야. 그 돈 들이고 거길 왜 다시 가냐고.

사람은 자기감정도 조작한다니까. 그러니까 실제로는 돈 쓰고 몸만 힘들었던 거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런 게 별거 아니라는 걸 배워가는 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진짜 행복은 그런데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돈을 내면서 배우는 거지.


D)

진짜 행복이 뭔 줄 아냐?

진짜 행복은 좋은 아파트 거실에서 비싼 가죽 소파에 누워서 음질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들으며 TV 보며 뒹굴거리는 거야. 헛 돈 쓰면서 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집 사고 돈 벌어서 좋은 방에서 뭉개면서 살 궁리를 해.

그게 자본주의 세상의 진정한 행복이야.

그니까 제발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하고 돈 벌 궁리를 좀 해. 진심이다 이거...

'지중해 횡단?' 그거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차라리 집 팔아서 주식을 산다고 해라 그게 훨씬 더 미래가 있으니까...

미래를 바라보는 거 그게 '꿈' 아냐?


"맞아 맞아!! ㅋㅋㅋ" (A, B, C, D 이구동성)


"........"


이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일정부분 그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일이 있은 후로 "꿈이 뭐니?" 같은 유도신문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꿈' 이야기는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


얼마 전 읽은 소설의 서문 한 부분이 생각나서 여기 붙인다.

이 글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생각나서 옮긴다.


(모 소설 프롤로그에서 발췌)

어떤 천재 과학자가 시간을 멈추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일종의 타임머신?)

그 과학자는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하여 드디어 시간을 멈추는 방법을 찾아냈다.

연구의 일부가 유출되면서 세상은 떠들썩해졌지만 과학자는 공식적으로 연구 성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수많은 기자와 학계에서 논문 발표를 요구했지만 과학자는 어떤 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학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과학자의 실종 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고 많은 추측이 난무했다.

납치설이 가장 많았고 연구 성과가 거짓이라는 쪽도 꽤 많이 있었다. 세간은 그를 폄훼하기 시작했고

과학자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연구에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 중에는 그 과학자가 시간의 빈틈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비웃고 있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익명의 계정으로부터 이런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랐다.

동영상은 매우 밝게 웃고 있는 과학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러분!!! 시간을 멈추고 싶으세요?

일상을 반복하세요. 그럼 당신의 시간은 멈출 겁니다.

오늘 한 일을 내일 하고, 모레도 하고, 그다음 날도 하고 계속 똑같이 반복해 보세요.

그럼 당신의 시간은 멈추게 될 겁니다.


일상을 매일 똑같이 반복하다 보면 당신의 미래는 예측 가능하게 될 것이고 변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시간을 멈추는 것의 시작입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이'와 '매일'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간을 멈추고 싶으십니까? 그럼 똑같은 생활을 매일매일 반복하세요.

말도 늘 똑같은 단어만 써서 하고 만나는 사람도 늘 똑같은 사람만 만나세요.

그럼 시간은 분명히 멈춥니다. 영원히 제자리에 있을 수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 어렵지도 않아요.


이렇게 시간을 멈춰놓고 살면 정말 행복하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똑같을 테니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중요한 건 내일의 나도 똑같다는 겁니다.

이거 참 흥분되는 일이죠. 하하하!!"


(후략)




꿈을 가지는 것과 목표를 가지는 것은 다르다.

꿈을 가질 때 인간은 인간으로서 지혜로운 존재인지 증명할 수 있다.

(김경일. 인지 심리학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