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귀 밑 머리가 어느 날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가만 놔뒀더니 주위에서 염색을 하라고 성화다.
"야! 넌 귀밑머리 염색만 하면 10년은 더 젊어 보일 거야"라고.
가만 보니 꼭 흰머리 독수리(?)처럼 귀 옆 구레나룻 부분 3cm 정도만 완전히 백발이 됐다.
처음에는 염색약을 콩알만큼 조제해 면봉에 묻혀 이곳만 살짝 염색을 했었다.
근데 이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내 기술로는 귀나 다른 부위에 묻히지 않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염색이랍시고 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드라큘라 백작을 닮은 듯한 헤어스타일로 살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이제 염색을 하지 않는다.
이게 노동력에 비해서 얻는 게 너무 적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주도 살 때 내 전속 이발사 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야, 이거 참 특이하네요. 멋있어요. 이거 괜찮은 스타일이니 염색하지 말고 살려도 될 거 같아요."
"음, 정말요? 멋있나요?"
"네, 아주 분위기 있어 보여요."
나는 이 이발사의 말을 철저히 믿었는데, 필리핀에 와서 보니 아무래도 그가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어제 손님을 맞으러 팡라오 공항에 나가 덩그러니 서 있는데,
보홀의 유일한 20대 여자 가이드 '케이티'가 인사를 한다.
지구상에서 내게 먼저 인사를 해주는 유일한 여성이라고나 할까?
난, 내 말을 받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무조건 떠들고 본다.
한참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다가 예전에 초록색 머리를 했던 케이티 선배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실물로 본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너희 사무실에 있다."라고 했더니,
"그게 누구예요? 여긴 그런 사람 없는데, 세부 사무실에 있어요?" 하고 궁금해한다.
그렇게 염색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케이티야 나 흰머리 때문에 고민인데 검은 머리를 완전히 흰색으로 염색하면 어떨까?"
나는 이 말을 하고 내가 너무 멋진 생각을 해냈다고 스스로 감탄했다.
케이티는 날 빤히 보더니,
"선배님, 왜 이러세요. 지금도 충분히 멋있으세요." 이런다.
그래서, "아니 난 더 멋있어지고 싶어." 했더니,
"선배님, 제가 검은색 염색약 사 드릴게요." 이러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넌, 내가 더 멋있어지는 게 두렵냐?" 했더니,
"네, 전 선배님이 백발이 되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니까 제발 정신 차리세요."
이러는 게 아닌가.
그때 알았다.
난 흰색으로 염색을 해야 할 운명이구나.....
이번 팀 끝나고 미용실 가서 알아볼 생각이다.
"머리를 흰색으로 염색하고 싶은데 얼마요?" 하고.
역시 인간은 생각의 전환을 하며 살아야 한다.
아마도 며칠 뒤면 멋진 내 모습에 내가 반하지 싶다.
ㅋㅋㅋ
이 녀석은 꼬리까지 흰색이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까??
만나면 염색약 내가 하나 사주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