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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r 16. 2023

젠장, 비 온다..

우연 같은데 우연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좀이 쑤셔 잠깐 오토바이 타고 나왔는데,

젠장 비가 내린다.

근데, 비를 피해 들어온 집이 운 좋게도 커피 원두 판매점이다.


그동안 필리핀 커피 체인점 중에는 제일 큰 '보스 커피'에서 원두를 사 먹었는데 이게 영 별로였다.

스타벅스를 그렇게 찾았건만 보홀에는 스타벅스가 없는 듯하다.

여기 커피 원두가 일곱 종류 정도 되는데 모두 필리핀 산이다. 

지금까지 먹어 본 필리핀 원두는 내입에 맞지 않았다. 

왠지 쓴맛이 강해서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여긴 그나마 종류가 좀 있으니 하나씩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중에 입에 맞는 녀석을 찾기라도 한다면 그건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런 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닌가 싶다.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커피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신기하게 커피의 신맛(Sour)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했다.(내 영어 탓이겠지?)

한참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주인장이 SAGADA를 한 잔 해보겠냐고 묻는다.

비 피하러 들어온 마당에 그냥 나가긴 뭐해서 한 잔 달라고 했다.


SAGADA는 필리핀 대표 원두라 기념품 점에서 많이 파는 커피인데, 쓴 맛이 강해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문점에서 내리면 좀 다를까 싶어 거절하지 않고 주문을 했다. 

"음~~", 아니나 다를까 역시 쓴 맛이 너무 강하다.

가뜩이나 쓴 커피를 로스팅까지 강하게 하니 탄 맛이 가미돼 마시기가 더 힘들다.  


처음 커피를 마실 때 신맛에 빠져서 아프리카 쪽 커피를 엄청 마셨었다. 

나중에는 질려서 마시지 않게 됐지만 처음 빠졌던 산도(度) 높은 커피의 맛을 잊지는 못 한다.   

그래서인지 피곤하거나 요즘처럼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상황이 오면 신맛의 커피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찾을 수 없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나는가 보다.

그나마 스타벅스에는 원두를 다양하게 파니 세부(Cebu) 있을 때는 거길 자주 애용했었다.  

근데 여기 보홀(Bohol)엔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가 없다. (내가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가 쉬이 그치지 않아 디저트를 덤으로 시켰다. 

혹시 들어는 봤는지 '망고 마야'라고... '망고 비빔밥'과 비슷한 개념이다.


여기 사람들은 설탕물로 밥을 짓는다. 

바나나 잎에 싸서 찐다고 해야 하나?? 

나름 유명한 필리핀 간식인데 내 입맛에는 이게 별로이다. 

한국인 중에 이걸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내가 마신 SAGADA 커피값이 빠져 있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커피 이야기 재밌게 해서 주인장이 서비스하는 거라고.... 


헐~~, 할 수 없이 제일 비싼 커피로 250g을 갈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팁박스에 팁도 1달러 넣았다. 

젠장, 이 친구가 장사를 할 줄 안다.


커피가 맛있기를 기대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앞으로 여기 자주 오게 될 거 같다.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아는 사람도 생기고, 단골집도 생기고... 

이런 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지 싶다.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이제 비가 그쳤다.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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