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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Mar 14. 2023

이런 메모를 발견했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오랜만에 컴을 정리하다가 '휴지통' 용도로 만들어 놓은 '잡문 2'라는 폴더에서 이 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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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주고 간 편지는 그리 길지 않은 몇 줄의 문장이었다.

나는 일본어로 된 그 글이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용을 번역하진 않았다. 

내가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런 편지를 주고 간 데는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편지를 읽지 않고 책상 서랍에 던져 넣었다.

언젠가 마음이 내키면 편지를 읽어 볼 생각이었다.


가끔 노을빛에 물든 바닷가에서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인의 뒷모습을 볼 때면 나는 그녀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편지 생각이 난다. 서랍 속의 편지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녀가 세부(Cebu) 막탄 공항에서 편지를 주며 했던 마지막 말이 과연 의미가 있는 말이었을까?


(후략)


( 소설 "AV배우와 친구가 되는 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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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을 만든 날짜를 보니 아마도 몇 년 전에 '오슬롭의 투말록 폭포'에서 만났던 

일본 손님 이야기인 것 같다. 폭포에서 사진을 찍어줬던 손님을 세부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다시 만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유명인(?)이었다.


찾아보면 이 글의 앞부분이 어딘가 있을 텐데 그동안 컴이 여러 번 바뀌는 통에 

찾기가 쉽진 않을 듯싶다. 아침에 자투리 문장으로 만들어진 이 글을 읽다 보니 

갑자기 전문이 궁금해졌다. 내가 썼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어제저녁에 동네 '깐틴(로컬 식당)'에서 우연히 폴란드 아가씨랑 같은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영어를 네이티브 미국인 수준으로 했다. 솔직히 난 절반은 못 

알아들었는데 내가 듣기에 분명 영국식 억양은 아니었다. "폴란드에서 미국 

억양이라니??" 대화 중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 달 27일까지 휴가라는데 아마도 유럽식의 길고 긴 휴가일 것이다.

나는 세부와 보홀에서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아이템을 설명해 줬고 그녀는 내 어설픈 영어 

설명을 열심히 들어줬다. 이름도 묻지 않고 헤어졌지만 30분도 넘게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녀는 식사가 끝나고도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거 아닌 작은 예의였지만 무척 교양 있게 느껴졌고 또한 고마웠다.


그 친구가 가자 우리를 훔쳐보고 있던 현지인 젊은이들이 몰려와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전화번호 땄냐?", "내일 만나기로 했냐?", "호텔로 갈 거냐?" 등등..


외국 관광지에 살면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가끔은 스치듯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로맨틱한 경험도 하게 되고, 

이렇게 로컬 꼬치 집에서 친구를 사귀게도 된다. 


그 폴란드 아가씨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오늘 아침에 위 글을 볼 때 느낌이 좀 묘했다.

살다 보면 그냥 잊기는 아까운 일들도 있으니 그때의 메모를 찾아서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노력은 해봐야겠다. 

살면서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일을 만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더 소설 같은 일을 겪기도 했고........


투말록 폭포 (Tumalok, Oslob Cebu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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